日여당 '미투' 비하…피해자에 "범죄"·가해자 '파면 대신 사퇴'

입력 2018-04-24 13:27
日여당 '미투' 비하…피해자에 "범죄"·가해자 '파면 대신 사퇴'

전 문부과학상 "주간지에 녹음 파는 것 범죄"…우익들은 "미인계다" 조롱

'미투' 목소리 높아지지만, 아소 부총리는 "당사자는 속았다고 호소" 두둔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여당 정치인들이 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인양 비판하고,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를 조롱하는 발언을 잇따라 해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24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공산당은 전날 자민당의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전 문부과학상이 강연에서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전 재무성 사무차관에게 성희롱을 당한 피해 여성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발언을 한 사실을 공개했다.

시모무라 전 문부과학상은 "숨긴 녹음기로 얻은 것을 TV 방송국의 사람(피해 여기자)이 주간지에 파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범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후쿠다 전 차관은 TV아사히의 여기자에게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 TV아사히가 피해 여기자의 녹취를 듣고도 보도하지 않자, 이 여성은 주간지 주간신조(週刊新潮)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신조의 보도 후 성희롱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TV아사히는 뒤늦게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 사실을 알리고 재무성을 비판했다.

시모무라 전 문부과학상의 발언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피해 여기자가 금전적 이익을 위해 주간지에 녹취 음성 파일을 판매한 것처럼 왜곡해 비난한 것이다.

그는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전날 밤 "부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사과했다.

일본에서는 여기자 성희롱 사건 후 그동안 다른 나라에 비해 좀처럼 확산하지 못하는 '미투' 열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지만, 여당 정치인들과 우익 인사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찬물을 끼얹고 있다.

자민당 소속 나가오 다카시(56·長尾敬) 중의원 의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여기자 성희롱 사건에 대해 항의하는 야당 여성 국회의원들의 외모를 비하하며 빈정거렸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발언을 철회했다.

그는 야당 의원들이 검은 옷을 입고 '# 미투'라고 적힌 손푯말을 든 채 재무성을 항의 방문한 사진을 올리며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분들은 적어도 내게는 성희롱과 인연이 먼 분들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사진 속 의원들)에게 절대 성희롱하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라고 적었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지난 2016년 부적절한 정치자금 사용문제로 사퇴했던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도쿄도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기자로서 자부심은 없는 것인가"라며 오히려 여기자를 탓하기도 했다.

또 극우 소설가로 악명이 높은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 씨는 "일종의 허니 트랩(미인계)이다"면서 가해자 대신 피해자를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이날 문제의 후쿠다 전 차관에 대해 파면 등의 징계를 하지 않고 사임하도록 해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8일 후쿠다 전 차관이 사임 의사를 밝힌 뒤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말고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소 부총리는 이날 사임사실을 발표하며 "당사자가 속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세상에는 여러 의견이 있다"며 후쿠다 전 차관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여기자 성희롱 사건이 일어난 뒤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피해 여성을 지지하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희롱 문화를 바꿔보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연구자, 변호사, 기자, 야당 의원 등 120명은 전날 도쿄(東京)의 중의원 회관에서 '#With You(피해자와 함께 있다)'라고 적힌 손푯말을 든 채 집회를 열어 '미투' 열풍에 불을 지폈다.

도쿄신문의 경우 지면을 통해 이 회사 여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혹은 사내에서 일하면서 겪은 성희롱 피해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아픈 채로는 그대로 있을 수 없다"는 여성 문화부장(1986년 입사)의 비판을 전하며 자사 여기자들의 피해 사례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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