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컵 갑질'이 자매 퇴진 '쓰나미'로…한진家 뒤늦은 수습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한진 총수 일가의 비위 논란이 '물벼락 갑질'에서 시작해 탈세 의혹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2일 대국민사과와 함께 조현아(44)·조현민(35) 자매 퇴진이라는 수습책을 내놨다.
열흘간의 침묵 끝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조 회장의 수습책은 이미 태풍으로 급변한 사태를 정리하고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이 이미 '물벼락 갑질'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고 조 회장 일가의 밀수·탈세 의혹에 관세청도 자택과 대한항공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의 칼을 꺼내 드는 등 사태는 이미 당국의 한진그룹 불법 의혹 수사단계로 급진전했기 때문이다.
그룹 내부적으로 자매가 경영에서 손을 떼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수많은 의혹이 전 국민에 알려진 이상 수사의 칼끝은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이른바 '물벼락 갑질'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달 12일 조 회장의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003490] 전무가 지난달 광고대행사와 광고 회의를 하면서 대행사 직원에게 고성을 지르고 컵을 던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의 질타가 시작됐다.
조 전무는 공식적인 사과 없이 자신의 SNS를 통해 "제가 정말 잘못했다"고 사과했지만 "광고를 잘 만들고 싶은 욕심에 냉정심을 잃었다"는 식의 해명을 붙여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당시 휴가를 내고 해외로 떠났던 조 전무는 SNS에 기내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나를 찾지마'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비난을 키웠다.
그러나 한진 총수 일가의 갑질 파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꽁꽁 숨겨져 왔던 가족들의 '갑질'이 하나둘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직장인 익명 앱(App) 블라인드와 각종 인터넷 게시판,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까지 조 전무와 한진 일가의 폭언 등을 고발·증언하는 글이 쏟아졌다.
지난 14일에는 조 전무가 회사에서 직원에게 욕설과 함께 고성을 지르는 것이 녹음된 음성파일이 공개되며 파장을 키웠다.
극도로 흥분한 여성이 날카롭게 괴성을 지르며 화를 내는 음성파일이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했고, 조 전무가 정상적으로 판단하고 경영할 능력이 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까지 커졌다.
조 전무는 15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취재진을 만나 "제가 어리석었다"고 사과했지만, "얼굴에는 (물을) 안 뿌렸다"고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논란 나흘 만인 16일 대한항공은 조 전무를 대기발령했지만, 이 또한 '무늬만 대기발령'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다.
대기발령이 "경찰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라는 단서를 단 데다 2014년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경영에서 물러났던 언니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례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은 '땅콩 회항' 파문 직후 대한항공 부사장을 비롯해 칼호텔네트워크와 왕산레저개발, 한진관광 등 그룹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3년여 뒤인 지난달 29일 한진그룹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슬그머니 복귀했다.
제대로 된 반성과 후속 대책이 나오지 않자 정치권에서도 조 전무의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청와대 사이트에는 '대한항공 사명과 로고를 변경해 달라', '국적기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원이 계속 올라왔다. 경찰과 검찰도 '물벼락 갑질'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번 논란은 미국 국적인 조 전무가 6년간 불법으로 진에어[272450] 등기임원에 올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항공법상 외국인은 국적 항공사의 등기임원이 될 수 없는데, 2010∼2016년 조 전무가 등기임원을 지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런 사실을 감독하지 못한 국토교통부로도 불똥이 튀었다.
국토부는 김현미 장관 지시로 당시 '봐주기' 등이 있었는지 자체 감사에 착수했다.
19일에는 조 회장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막말·욕설 논란에 휩싸였다.
이 이사장이 운전기사·가정부·직원 등에게 일상적으로 욕설과 폭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고, 자택 공사를 하던 작업자에게 폭언하는 음성파일이 공개됐다.
이즈음 대한항공 직원들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개설한 익명 '제보방'에 각종 제보와 증언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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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의미 있는 제보와 증거자료가 언론에 제보되면서 보도를 통해서도 공개적으로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한진 총수 일가의 밀수·탈세 의혹이 나왔다.
한진 일가가 특정일에 해외에서 물품을 사 오면서 이를 회사 물품으로 둔갑시켜 운송료와 관세를 내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의혹까지 제기됐고, 관세청은 21일 재벌가에 유례없는 압수수색에 나서 한진가를 긴장시켰다.
22일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조양호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 방음공사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일가가 고성·막말 논란을 일으킨 상황에서 자숙하기보다 큰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보안에만 신경을 쓰고 있느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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