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감일동 고분군은 백제의 북망산"

입력 2018-04-22 06:01
수정 2018-04-22 10:54
"하남 감일동 고분군은 백제의 북망산"

4∼5세기 백제 최고위층 공동묘지

"상상도 못 한 유적" 혹은 "복권 당첨"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4세기 중반부터 5세기 초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 석실분이 무더기로 발견된 하남 감일동 고분군은 왕족과 귀족이 묻힌 백제의 북망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은 문재범 하남역사박물관장은 22일 한성도읍기 백제(기원전 18∼475년)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 돌방무덤) 50기가 밀집한 경기 하남 감일동을 북망산(北邙山)에 비유했다.

중국 허난성 뤄양(洛陽) 북쪽에 있는 북망산에는 한나라 이후 제왕과 귀인, 명사 무덤이 만들어졌다. 사람이 죽으면 묻힌다는 '북망산천'(北邙山川)은 북망산에서 유래했다.



하남감일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 과정에서 나온 백제 고분군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건축한 석실분을 제외한 다른 무덤이 없고, 중국에서 제작한 뒤 백제로 건너온 것으로 짐작되는 '청자 계수호(鷄首壺·닭머리가 달린 항아리)'와 '부뚜막형 토기'가 국내 최초로 출토됐다는 점에서 최고위층 집단 묘지라고 할 수 있다.

횡혈식 석실분은 백제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이다. 직사각형으로 땅을 파서 바닥을 다진 뒤 길쭉하고 평평한 돌을 차곡차곡 쌓고, 한쪽에 무덤방에 드나들 길을 만든 구조다.

감일동 고분군 조성 시기는 백제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재위 346∼375년) 이후와 겹친다. 학계가 이 고분군을 "상상도 못 한 유적" 혹은 "복권 당첨"이라고 표현하며 한성도읍기 백제사 비밀을 풀 열쇠로 보는 이유는 한 곳에서 50기에 달하는 한성시대 석실분이 나온 적이 없고, 이 시기 왕성으로 확실시되는 풍납토성과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확인된 한성백제 횡혈식 석실분은 모두 70여 기로 알려졌다. 경기도에서는 성남 판교 유적에서 약 10기가 나왔고, 감일동 고분군에서 동쪽으로 2㎞ 남짓 떨어진 하남 광암동 고분군과 화성 마하리 고분군에서 한두 기가 확인됐다. 그런 희소성이 두드러진 석실분이 50기나 한꺼번에 발견됐으니 흥분할 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일제강점기 조사에 따르면 한성도읍기 백제 왕릉급 무덤으로 지목되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방이동·가락동 일대 고분은 대략 300기에 달했으나, 급격한 도시 개발로 대부분 조사도 없이 파괴되고 말았다.

감일동 고분군은 풍납토성과 4㎞, 몽촌토성이나 방이동 고분군에서는 약 3㎞ 떨어져 있다. 백제가 초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축조 주체가 백제인지 신라인지 논란이 많은 하남 이성산성은 3㎞ 거리에 있다. 사비도읍기 백제 왕성 자리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과 왕릉급 무덤이 모인 능산리 고분군 사이 거리가 대략 3㎞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는 "고고학 연구자들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동쪽 강동구 둔촌동과 하남 능선에 백제 석실분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감일동 고분군 같은 유적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감일동 고분군은 상태가 매우 양호한 데다 백제 유물밖에 나오지 않았고 100년 안팎 기간에 집중적으로 조성됐다는 점에서 순수성이 있다"며 "무덤을 조성한 시기와 나라에 대한 논란이 없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왕성과 가까운 곳에서 대규모 고분군이 나왔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문헌 사료가 부족한 한성도읍기 백제사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감일동 고분군은 백제와 신라 중 어느 나라가 만들었는지에 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방이동 고분군 성격을 구명하는 기준점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신 교수는 "감일동에 있는 무덤은 향후 한성도읍기 백제 석실분의 전형이자 잣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 관장은 "석촌동, 방이동, 가락동과 달리 하남은 오랫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개발이 제한된 탓에 석실분이 잘 보존됐다"며 "논쟁거리인 백제 석실분 봉분 형태가 원형인지, 직사각형인지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