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전 伊총리 분노 폭발…"국민이 형편없이 투표"

입력 2018-04-20 22:29
베를루스코니 전 伊총리 분노 폭발…"국민이 형편없이 투표"

정부 구성 지연 속 상원의장 중재도 무위…대통령 "이틀 더 생각 후 결단"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연정 협상이 교착에 빠지며 이탈리아가 총선 후 1개월 반이 지나도록 새 정부를 출범시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연정 협상 과정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분노가 폭발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20일 자신이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 소속의 마리아 엘리사베타 카셀라티 상원의장의 정부 구성 중재 노력마저 무위에 그치자 "커다란 혼란이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다"며 "이탈리아인들은 형편 없이 투표했다"고 주장했다.



이틀 후 열리는 지방선거 유세를 위해 남부 몰리제를 찾은 그는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을 혐오감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카셀라티 의장은 총리 지명권을 쥐고 있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으로부터 이번 총선을 통해 최대 정당으로 약진한 반체제 오성운동과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진영인 우파연합의 연정 합의를 이끌어내라는 특명을 이틀 전 받고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오성운동이 "부패의 대명사인 베를루스코니와는 함께 정부를 꾸릴 수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음에 따라, 카셀리티 의장은 이날 빈손으로 마타렐라 대통령을 만나 알맹이 없는 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는 전날 카셀리티 의장을 만나 "정부 구성에 있어 동맹과만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지만, FI나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외부에서 오성운동-동맹 연합정부를 지지하는 것을 막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연정 구성을 위해서는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버려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과 거의 차이가 없는 디 마이오 대표의 완강한 태도에 가로막혀 카셀라티 의장의 중재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극우정당 동맹, FI 등 우파 4개 정당이 손을 잡은 우파연합이 37%의 표를 얻어 최다 득표를 했고,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은 32%의 득표율로 최대 정당으로 발돋움했으나 어느 진영도 과반 득표에 실패함에 따라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각 정당끼리의 합종연횡이 불가피하다.

지난 5년 동안의 집권 세력인 중도 좌파 민주당은 19%의 표를 얻는 데 그치며 총선에서 참패한 뒤 야당으로 남을 것이라고 선언, '캐스팅 보트' 역할을 자진해서 포기했다.

또, 우파연합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동맹의 경우 베를루스코니를 버리라는 오성운동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우파연합에서 탈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음에 따라 현재 연정이 가능한 유일한 방정식은 사실상 오성운동과 우파연합의 결합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오성운동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에 대한 거부 입장을 거두지 않으며, 이탈리아 연정 구성 협상에는 좀처럼 돌파구가 열리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오성운동의 계속된 거부에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이날 몰리제 유세를 앞두고 "민주주의의 'abc'조차 모르는 오성운동과는 어떤 합의도 불가하다"며 "오성운동은 이탈리아를 위험에 빠뜨리는 세력이며, 그들이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나는 살비니 동맹 대표나 조르지아 멜로니 FDI 대표와는 다르게 생각한다"며 우파연합이 민주당 등과 연대해 정부를 꾸리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살비니 동맹 대표는 그러나, 민주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을 시사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해 "민주당과 연대를 시도하려면 동맹의 참여를 기대하지 말라"며 총선에서 패배한 민주당과는 함께 정부를 꾸릴 수 없다는 기존 방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편, 점증하는 시리아 위기, 격화하는 글로벌 무역 분쟁 등 시급한 현안에 대처하기 위해 조속한 정부 출범을 강조하고 있는 마타렐라 대통령은 카셀레티 의장으로부터 중재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은 뒤 향후 이틀 간 숙고를 거친 뒤 후속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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