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최고 요리서로 맛보는 고대 로마 진미
400여 가지 조리법 담은 '데 레 코퀴나리아'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구울 (고기) 껍데기 표면에 칼집을 낸다. 절구에 후추, 러비지, 딜, 쿠민, 실피움과 월계수 열매 하나를 넣고 빻아 리쿠아멘을 부어 섞어 진득하게 만든 다음, 구운 고기와 만들어 놓은 양념을 모두 사각형 팬에 붓는다. 이틀에서 사흘 정도 그대로 양념 속에 재워두었으면, 고기를 꺼내어 가로세로 열십자 모양으로 엇갈려 꼬챙이를 꽂아 오븐에 굽는다."
'미쉐린 스타' 식당 요리법인가 싶은 이 글은 가장 오래된 서양 요리서인 '데 레 코퀴나리아'(De re coquinaria·요리에 관하여)에서 발췌한 것이다.
기원전 1세기 전후를 산 전설적인 미식가 마르쿠스 가비우스 아피키우스가 책 저자로 알려졌다. 원문은 전해지지 않고 9세기경 카롤링 왕조 때 필사본만이 내려온다.
지중해 지역 고대인들이 즐긴 400여 가지 요리법을 담은 '데 레 코퀴나리아'는 지난 수천 년간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당대 인사들은 물론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도 이 책을 언급했고, 일본 인기 요리만화 '식극의 소마'에도 그 이름이 등장한다.
'데 레 코퀴나리아'가 출판사 우물이 있는 집을 통해 출간됐다. 독일에서 미술사, 고전고고학 등을 공부했고 서울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박믿음 씨가 라틴어 원전을 옮겼다.
책은 '아피키우스가 저녁 만찬을 시작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채소와 해산물, 육류 등 각종 식재료 특징, 이들을 보관·저장·손질하는 방법, 향신료 목록, 죽부터 호화요리, 디저트까지 온갖 종류의 요리법이 펼쳐진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 상세함과 노하우에 놀라게 된다. 초반부 완자 부분만 해도 오징어완자, 바닷가재완자, 가시굴완자, 닭고기완자 등 종류와 요리법이 다양하다. 프렌치 토스트처럼 현대인이 즐기는 음식들도 눈에 띈다.
이제 국내에서 접하지 못하는 외국 요리는 거의 없다. 하지만 서양 식문화와 역사를 알려주는 1차 문헌이나 자료는 국내에 소개된 경우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책이다. 역자가 책 후반부에서 들려주는 아피키우스에 얽힌 일화도 흥미롭다.
272쪽. 2만8천 원.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