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날" 사우디 35년만에 상업영화 상영

입력 2018-04-19 09:52
"역사적인 날" 사우디 35년만에 상업영화 상영

첫 영화는 '블랙팬서'…5년내 영화관 40개 추가

빈살만 왕세자 개혁 일환…개방·온건화 바람 '가속화'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할리우드 마블 영화 '블랙 팬서'(Black Panther)가 보수적인 이슬람국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35년만에 첫 상업영화로 상영됐다.

이 영화 상영을 계기로 최근 사우디 사회 곳곳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18일(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AMC 체인 영화관에서 '블랙 팬서'가 선보였다.

AMC는 사우디에서 35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연 상업영화관이다. 이날 영화관 개봉작으로 '블랙 팬서'가 선보인 것이다.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었던 이날 행사에는 정부 관료, 연예계 스타는 물론 왕실 공주들도 참석했다. 일반 관객은 20일부터 영화를 볼 수 있다.

이날 친구와 함께 극장을 찾은 푸즈 알티야비 초등학교 교감은 "우리는 매우 행복하다"며 "이런 영화 상영은 진작에 이뤄졌어야 될 일"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AMC엔터테인먼트 최고경영자 애덤 에런도 "오늘은 AMC는 물론 사우디에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에는 1970년대에만 해도 영화관이 있었지만 1980년대 초부터 상업 용도의 극장이 금지됐다. 1979년 이란이 이슬람 혁명으로 보수적인 신정일치 통치로 급변하자 이에 영향받아 사우디 역시 엄격한 종교 율법을 적용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보수적인 사우디가 이번에 오랜 '관습'을 깬 것은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경제·사회 개방의 일환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왕위 계승자인 빈살만 왕세자는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사우디 국민이 더 즐겁게 살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국민이 "종교의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사우디는 따분한 곳"이라고 불만을 드러내 온 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셈이다.

이에 사우디는 최근 여성 운전금지 해제, 오페라 하우스 착공, 여성 사이클 대회 첫 유치 등 여러 개혁 조치를 추진했다.

여기에 상업영화 개봉까지 허용한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상업영화 개봉을 통해 경제 발전도 꾀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설명했다.

지금까지 영화를 보기 위해 인근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나갔던 사우디 국민이 이제는 국내에서도 엔터테인먼트 관련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극장 산업이 확대되면 고용 창출 효과도 생길 것으로 사우디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블랙 팬서'는 할리우드 블랙파워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흑인 어벤저스 영화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2009∼2010년 시즌 '아바타'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북미 박스오피스(영화 흥행수입) 순위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다. 지금까지의 흥행수입은 12억 달러(약 1조2천800억원)에 달했다.

'블랙 팬서'는 가상국가 와칸다의 왕자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희귀금속 비브라늄을 탈취하려는 위협에 맞서 조국의 운명을 걸고 전쟁에 나서는 영웅 스토리다.

왕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왕실 경쟁자들을 몰아내고 왕위 계승을 확정 지은 빈살만 왕세자의 모습과 비슷해 이번 개봉작으로 선정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에런 AMC 최고 경영자는 그런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블랙 팬서는 매우 인기 있는 영화로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 줄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AMC는 향후 3∼5년간 사우디 15개 도시에 40개 영화관을 추가로 개장할 예정이다. 5∼10년 후에는 영화관 수를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에런 최고경영자는 "우리는 사우디에 큰 비전과 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coo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