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 슈터'에서 우승 사령탑으로 변신한 SK 문경은 감독

입력 2018-04-18 21:04
수정 2018-04-18 22:24
'람보 슈터'에서 우승 사령탑으로 변신한 SK 문경은 감독



5년 전 챔피언결정전 4전 전패 아픔 딛고 '와신상담'

사람 좋은 감독, 스타 출신 지도자 성공 못 한다는 속설 깼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SK 지역방어는 제가 선수로 뛴다면 10초 만에 깰 수 있는 수준입니다."

5년 전인 2012-2013시즌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 유재학(55) 감독이 서울 SK 문경은(47) 감독을 앞에 두고 했던 말이다.

문 감독이 연세대 재학 시절 코치로 모셨던 스승인 유재학 감독의 말이었다고는 해도 문 감독은 상대 팀 사령탑의 도발에 대해 반박하기는커녕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유 감독님과 이렇게 대결하게 된 것만도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결국 당시 챔피언결정전은 모비스의 4-0 완승으로 끝났고, 주위에서는 "동네 형 같은 문경은 감독이 우승까지 차지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냉정한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7-2018시즌을 앞두고 문경은 감독은 사람 좋은 것은 여전했지만 승부사 기질은 달라져 있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그는 주위에 "여자농구 위성우 감독을 찾아가서 선수단 관리나 시즌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문 감독과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1971년생 동갑이지만 학번이 문 감독이 하나 빨라 선배다.

선수 시절 활약상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고, 감독 경력도 더 짧은 후배를 직접 찾아가서 배우겠다는 그의 말은 현역 때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스타 출신 지도자답지 않은 발상으로 들렸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이드 스텝을 밟는 수비에 핸드볼 스텝이 좋다는 의견에 곧바로 같은 SK 소속인 SK 호크스 핸드볼팀 코칭스태프로부터 스텝을 밟는 방법을 약 1주일간 배우게 하는 등 '열린 사고'를 유지했다.



18일 끝난 2017-2018시즌 챔피언결정전 원주 DB와 시리즈에서 보여준 문 감독의 모습은 '허허' 웃다가 4전 전패로 호되게 당한 5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1, 2차전에서 연달아 패해 챔피언결정전 6전 전패가 되고 난 이후 3차전에서도 20점 차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기어이 대역전승을 거둔 문 감독은 TV 중계 인터뷰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었다.

큰 고비를 넘긴 문 감독은 이후로는 '노련한 승부사'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며 시리즈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체력이 떨어진 김선형, 김민수를 후반에 주로 투입하는 작전에 성공했고, 1, 2차전에서 대폭발한 DB 디온테 버튼의 수비수로 벤치 멤버인 최원혁을 과감히 중용해 버튼의 폭발력을 억제했다.

또 애런 헤인즈가 플레이오프에 뛸 수 없게 되면서 위력이 반감될 것으로 우려된 변형 지역방어(드롭존)를 최준용, 안영준 등을 활용하며 구사해 팀의 장기인 속공 위력을 극대화했다.

현역 시절 호쾌한 '람보 슈터'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기도 하고, 말년에는 벤치 멤버의 설움까지 두루 겪은 문 감독은 그래서인지 선수들을 질책하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더 등을 두들겨주는 '믿음의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하나로 묶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모래알 팀워크'로 비판을 받던 SK는 이번 시즌 김선형, 헤인즈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 악재가 겹칠 때마다 하나로 뭉치는 끈끈한 모습을 보이며 정상에 우승 깃발을 기어이 꽂았다.

사람은 좋지만 '샤프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에서 '문띵'이라는 별명이 있는 문 감독이지만 이번 우승으로 '성공한 스타 출신 지도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광신상고와 연세대를 나온 문경은 감독은 이상민, 서장훈 등과 함께 1993-1994 농구대잔치에서 대학팀 최초의 우승을 일궈내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1994년 실업 삼성전자에 입단했고 프로에서는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을 시작으로 2001년 인천 SK(현 인천 전자랜드), 2005년 서울 SK를 거쳐 2010년 은퇴했다.

은퇴 후 2010-2011시즌 SK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011-2012시즌 SK 감독대행을 거쳐 2012-2013시즌부터 정식 감독이 됐다.

감독대행 시절을 포함해 7시즌을 치르면서 챔피언결정전에 두 차례 올라 우승 1회, 준우승 1회의 성적을 냈다.

프로 선수 시절인 2000-2001시즌 삼성에서 우승한 이후 올해 17년 만에 감독으로 다시 우승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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