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삼성 '노조활동 보장·사내하청 고용'에 기대 크다
(서울=연합뉴스)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직원 8천여 명을 직접 고용하고 노조활동도 보장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17일 협력업체 노조인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협상을 벌여 이런 방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전국의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사내하청 형태로 근무하는 수리기사 등 협력업체 직원들은 모두 삼성전자서비스의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된다.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업체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던 다른 대기업들의 방식과 달리 본사가 직접 채용하는 것이라 이례적이다. 특히 합법적 노조활동을 보장하기로 하면서 삼성이 80년간 유지해온 '무노조 경영' 기조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합의는 90여 개 협력업체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주장해온 노조의 요구를 회사 쪽이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협력업체 직원 485명은 2013년 7월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직접 업무지시를 받고 있다"며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사내하청 근로자는 파견근로자와 달리 원청업체의 직접 지시나 감독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실제로는 받고 있으니 자신들도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월 1심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고용노동부도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해 제기된 불법파견 의혹과 관련해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보기 어렵다"며 회사 쪽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전자서비스로서는 협력업체 직원들을 굳이 직접 고용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진일보한 방식으로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 채용하기로 한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합법적 노조활동을 보장하기로 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현재 삼성그룹 전체로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지회(삼성물산), 삼성웰스토리지회, 삼성에스원, 삼성생명,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증권, 삼성SDI 노조 등 8개 노조가 있다. 하지만 삼성계열사 또는 자회사가 공식적으로 노조활동을 인정한 것은 1938년 그룹 창립 이후 처음이다. 삼성 계열사 가운데 노조 규모가 가장 큰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활동 보장은 회사의 견제로 사실상 미미했던 다른 계열사 노조활동에 변화를 주는 것은 물론 삼성의 '무노조 경영' 기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는 형식상 주체가 자회사 경영진이지만 삼성전자 최고경영진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지분의 99.3%를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승인 없이 자회사가 독자적으로 그런 큰 결정을 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적어도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삼성전자의 '노조와해 공작' 문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번 합의의 직접적 계기였을 것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검찰 수사가 이 부회장의 대법원 상고심 재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부담감에 노조 문제를 서둘러 수습했다는 것이다. 배경이야 어쨌든 협력업체 직원을 직접 고용하겠다는 삼성전자서비스의 결단이 다른 대기업들로 확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삼성그룹도 노조를 견제해 위축시키려고만 하던 기존의 방어적 자세에서 벗어나 합법적 노조활동의 보장을 통해 노사 갈등관계를 해소하고 노사가 회사 발전을 위해 미래지향적으로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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