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유럽의회 첫 방문…"권위주의에 굴복 않겠다"(종합)
유럽의회 연설 "유럽 일종의 내전상태…민주주의 지켜내야"
"EU 통합심화·개혁 전에 회원국 늘리는 것은 반대"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유럽의회 연설에서 "내전"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유럽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했다.
최근 헝가리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우익 성향의 편협한 민족주의를 등에 업은 정치세력이 득세한 것에 대해 강력한 경고음을 낸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에서 연설하고 "유럽에 이기적인 민족주의가 발을 붙이고 있다"면서 민주주의의 보루로서의 유럽을 지켜내자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된 우리의 모습보다 서로의 차이와 이기적인 민족주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종의 내전(內戰)과 같은 현상이 유럽에 있는 것 같다"면서 "민주주의의 요람인 유럽의 독특한 정체성을 지키고 암투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아울러 "권위주의에 대한 응답은 권위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의 권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헝가리, 이탈리아, 폴란드 등의 정치 상황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최근 헝가리에서는 '난민·유럽연합 반대'를 기치로 내건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4선에 성공했고, 이탈리아 총선에서도 사회 전반에 퍼진 반(反)난민 정서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 여론에 편승해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이 나란히 약진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폴란드에서는 작년 말 사법부 인사권을 정부가 장악하는 등 유럽 곳곳에서 전통적인 서유럽식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대신 권위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마크롱은 이에 대해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을 포기하면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면서 "어떤 경우에도 권위주의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가 유럽의 권위주의 확대에 맞서는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유럽연합(EU)의 권한을 늘리고 회원국 간 통합을 강화하는 이른바 '유럽의 주권'이다.
그는 "시민들은 유럽을 포기하지 않았다. 유럽의 민주주의가 살아나고 계속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유럽의 주권이 우리에게 시민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명확한 책임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EU 통합 심화, 난민 수용 노력 강화, 디지털 경제부문 과세 강화, 유로존 경제 통합 심화 등 자신이 추진하는 유럽연합 개혁과제를 소개했다.
마크롱은 유로존 공동예산제 실시 등 특히 경제부문의 통합 가속화를 원하지만, 또 다른 EU의 핵심국인 독일은 자국의 경제적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며 주춤거리는 기류다.
마크롱은 며칠 뒤 베를린을 방문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EU 개혁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발칸반도 국가들의 EU 가입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마크롱은 "유럽의 통합이 심화하고 개혁이 진행된 후에야 EU의 외연확대를 지지하겠다"면서 "현재 28개 회원국으로 어렵게 작동하는 EU가 현재의 체제로 30∼32개국으로 외연을 확대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날 마크롱의 유럽의회 첫 연설에 대해 EU 행정부 수장 격인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진짜 프랑스가 돌아왔다. 내일의 역사는 오늘 쓰이게 될 것"이라면서 전반적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발칸 국가들의 EU 가입문제에 대해서는 견해차를 보였다.
융커 위원장은 "이 나라들을 제외해버린다면 1990년대의 전쟁 상황으로 돌아갈까 우려된다"면서 EU의 문호는 열려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U는 오는 2025년까지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등 서부 발칸 국가를 가입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옛 유고연방에 속했던 국가 중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이미 가입했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EU 가입 절차를 진행 중이다.
마케도니아는 2005년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얻었지만 국호를 둘러싸고 외교 분쟁을 벌여온 이웃 나라 그리스의 반대로 EU 가입에 진전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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