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에 담은 정치 풍자 블랙코미디…영화 '살인소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대권을 꿈꾸는 3선 국회의원 염정길(김학철 분)의 사위 이경석(오만석)은 장인을 등에 업고 대청시장 공천을 약속받는다. 장인과 한배를 타게 된 그는 비자금을 숨기고 오라는 지시를 받고 은닉처인 호숫가 별장으로 향한다. 동행한 내연녀 이지영(이은우)은 아내의 대학 동창이다.
이경석이 동네 어귀에서 누렁이 한 마리를 차로 치고 달아나면서 일이 시작된다. 자신이 키우던 누렁이의 횡사를 목격한 소설가 지망생 김순태(지현우)는 별장 관리인을 자처하며 이경석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미리 정교하게 짜놓은 계획대로 그를 함정에 몰아넣는다.
'살인소설'은 스릴러의 외피 안에 정치인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를 채워 넣은 영화다. 김순태가 쳐놓은 덫에 이경석이 착착 걸려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는 동시에 도덕적으로 평균을 한참 밑도는 인물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데 대한 사적 처벌이기도 하다. 관객은 속절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이경석에게 동정심을 느끼기는커녕 갈수록 좀 더 강력한 처벌을 원하게 된다.
영화는 하룻밤 동안 별장에 인물들을 고립시킨 채 진행된다. 이경석은 김순태의 눈을 피해 별장 안에 비자금을 숨겨야 한다. 하지만 김순태는 이경석과 이지영을 별장 마당에 앉혀놓은 채 자신의 계획대로 이들을 움직인다. 누렁이를 치고도 모른 체하는 이경석에게 사고를 실토하게 하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차를 몰고 담배를 사러 가게 만든다. 결국 결정적 덫은 정치인에게 더욱 치명적인 음주 뺑소니 사고다.
김순태는 10년 전 염정길이 권력을 악용해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과정에서 지인을 잃었다. 이 원한이 그의 후계자인 이경석에게까지 향한다. 이경석이 거의 회복불능 상태에 빠진 중반 이후로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영화 속 소설과 현실을 활용한 트릭도 곳곳에 심어놨다.
김순태는 선한 미소를 머금은 채 능청스러운 거짓말을 줄줄이 내놓으며 김순태뿐 아니라 관객까지 혼란으로 내몬다. 벌써 시장에 당선된 듯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소리치는 이경석은 지나치게 오만하고, 약점이 하나씩 들춰지자 과도하게 비굴해진다.
캐릭터가 대체로 과장됐고 공간이 한정된 탓에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진다. 논리와 개연성을 따지는 관객이라면 허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극적 분위기 덕분에 정치인의 거짓말·위선·무책임·꼼수를 풍자하는 블랙 유머가 빛을 발한다. 김진묵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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