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발행 디지털화폐, 재산권 침해소지…당분간 발행계획 없다"
관련 법 정비해야…시장 금리 조절은 가능
(서울=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한국은행이 발행한 디지털화폐(CBDC)가 실제로 나오면 사적 재산권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을 침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선종 숭실대 교수, 김용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석은 한은 과장은 16일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 시 법률적 쟁점'이라는 보고서에서 CBDC가 사적 재산권이나 개인·신용·금융거래 정보가 침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최근 전 세계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각 중앙은행이 실물 화폐 대신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CBDC 발행 방식으로는 가상통화와 비슷하게 정부가 공인하는 코인을 발행하거나 중앙은행이 개인·일반 기업에 계좌를 개설해주고 디지털화폐를 넣어주는 방법 등이 언급된다.
보고서는 그러나 현행법상 한은이 CBDC를 발행하면 기존의 법률·제도와 정면으로 상충할 위험성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재산권과 개인정보 침해다.
보고서는 "CBDC를 대상으로 한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재산권자의 동의 없이 실행되면 사적 재산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면 개인, 기업이 돈을 맡긴 대가로 은행에 오히려 이자를 내야 한다.
CBDC 제도 하에선 디지털화폐 발급을 위해 개설한 개인·기업 계좌에서 CBDC 발행을 독점하는 한은이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떼가게 되는 것이다.
보고서는 "'헌법상의 재산권 보장을 근본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형식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해 계좌로 넣어주는 방식도 실물 화폐 발행 때보다 개인정보 등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불거질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 대상자가 실물 화폐를 예치하는 고객에서 디지털 화폐를 보유한 국민 전체로 급격히 확대되기 때문이다.
CBDC를 발행하면서 개인정보 등을 수집하고 처리할 때 헌법과 법률상 제약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익명성을 지나치게 보장하면 CBDC로 자금 세탁 등 범죄 행위가 쉬워질 수 있다.
보고서는 "소액 거래의 경우 익명성을 보장해 사생활 침해를 예방하되 거액 거래에는 투명성을 강조해 자금 세탁에 악용하지 못하도록 이원화해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현행법상 한은이 개인, 기업에 화폐를 '직접 유통'할 수 없다는 점도 CBDC 발행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현재는 한은이 실물 화폐를 발행하면 은행과 같은 금융중개 기관을 거쳐 개인, 기업에 유통하는 '간접 유통'만 허용된다.
다만 보고서는 "중앙은행이 천문학적인 수의 개인 계좌를 별도로 개설하고 유지·관리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되고 중앙은행 시스템의 기술적 안전에도 더 높은 무결성이 요구된다"며 한은이 비용,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디지털화폐를 직접 유통해야 할 실익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영식 서울대 교수와 김동섭 한은 과장은 'CBDC 모형(A Model of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이라는 영문 보고서에서 "CBDC가 발행되면 CBDC에 지급되는 금리를 조정해 단기 명목 금리를 조정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중앙은행이 실물화폐, CBDC를 동시에 발행하고 CBDC 보유자에겐 일정 수준의 이자를 지급한다는 가정의 CBDC 모델을 만들어 통화정책 운용 방식을 분석했다.
이 모형으로 보면 CBDC 발행 후에도 공개시장 운영 방식으로 단기 시장 금리를 조절하는 현행 통화정책 운용 방식이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은 CBDC 논의에 대한 한은의 입장을 정리하는 데 참고할 목적으로 이 두 가지 보고서가 담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연구'를 발간했다.
다만 한은 관계자는 "가까운 장래에 국민이 사용하는 CBDC를 발행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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