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재판 회피 안간힘 쓰는…두테르테 '협박' vs 수치 '항변'
ICC, 초법 처형 필리핀과 로힝야 집단학살 미얀마 조사 착수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심각한 인권 탄압을 주도하거나 인권 유린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온 동남아시아 지도자들이 국제재판을 회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약과의 유혈전쟁' 과정에서 초법적인 처형을 주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자신을 기소하려는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를 체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로힝야족 '인종청소'를 방치한 아웅산 수치 측은 ICC의 관할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14일 로이터 통신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을 기소하기 위해 예비조사를 시작한 파토우 벤소우다 ICC 검사장을 체포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벤소우다 검사장을 겨냥해 "무슨 권한으로 예비조사를 하는가. 필리핀은 ICC 회원이 아닌데 왜 이 나라에서 그런 일을 벌이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그는 "필리핀은 더는 ICC 회원이 아니므로 ICC가 필리핀에서 어떤 것도 조사할 권한이 없다"면서 "ICC 검사가 이 나라에서 활동한다면 불법이기 때문에 체포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남부 다바오 시장 재직 때부터 암살단을 운영했고, 대통령 취임 후에는 마약 용의자 유혈 소탕 과정에서 4천여 명을 재판 없이 처형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벤소우다 검사장은 지난 2월 필리핀의 '초법적 처형'에 대한 예비조사 착수를 선언했고, 두테르테는 국제소송에 휘말릴 공산이 커지자 ICC 탈퇴를 선언했다.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학살하고 국경 밖으로 몰아냈다는 비판을 받는 수치 주도의 미얀마 정부도 ICC의 움직임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해 8월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경찰 초소를 습격하자 미얀마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토벌 작전을 벌였다. 수천 명의 로힝야족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70만 명에 육박하는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이 과정에서 미얀마군과 불교도들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방화 성폭행, 고문 등을 일삼으며 로힝야족을 국경 밖으로 몰아냈다고 주장했다.
유엔과 미국은 이를 '인종청소'로 규정해 비판했고 국제사회는 이런 사태를 방관하고 미얀마군의 행위를 옹호한 수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벤소우다 검사장은 최근 로힝야족 인종청소 행위에 대해 ICC의 관할권이 있는지를 질의했다.
이에 대해 미얀마 정부는 전날 성명을 통해 "정부는 이슬람교도들을 라카인주에서 방글라데시로 추방한 것과 관련, ICC 검사가 사법권을 신청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조사를 거부하는 국가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의 사법권을 인정하는 조항은 ICC 헌장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1969년 체결된 유엔 빈 협약은 해당국의 동의 없이 어떤 조약도 선포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미얀마 정부는 이어 "벤소우다 검사장은 주권과 내정 불간섭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이는 유엔 헌장과 ICC 헌장 서문에 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