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포천이동갈비
값싸고 푸짐하게 즐기는 소갈비의 감칠맛
(포천=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경기도 북부의 도시 포천. 산천경개(山川景槪) 좋은 이곳은 갈비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포천 하면 이동갈비, 이동갈비 하면 포천이 선뜻 떠오른다. 그만큼 이동갈비는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다. 양질의 소고기를 값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고장. 특히 주말이면 이동갈비의 본향인 이동면 일대는 갈비의 맛과 자연의 멋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더욱 북적거린다.
검은 참숯에서 잉걸불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빨간 불꽃과 함께 번지는 뜨거운 열기. 화로에 놓인 사각의 실실이 석쇠에 맛깔스러운 소갈비가 얹혀진다. 숯불과 갈비의 절묘한 만남! 직화로 빠르게 익어가는 고기의 향이 구수하게 콧속을 파고든다. 집게로 갈비를 뒤집는 손길에 신바람이 난다. 그 사이, 숯불과 구이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연기는 숯불 위 공중에 매달린 동그란 덕트 속으로 훌훌 잘도 빨려 들어간다.
갈비가 구워지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돈다. 갖가지 풍성한 반찬들이 시립(侍立)하듯 밥상에 펼쳐져 있다. 여기다 토속의 이동막걸리 한 잔 걸치면 금상첨화! 식당 밖 실개천 너머로 인공폭포수가 높다란 산 절벽으로 하얗게 쏟아져 내리고 소나무와 단풍나무는 따뜻한 봄바람에 춤추듯 살랑살랑 흔들린다. 심신이 홀가분해지는 오감 만족의 시간이 아닐 수 없다.
◇ 50여 년 전통의 포천 대표 음식
포천의 명산인 광덕산(해발높이 1천46m)과 백운산(904m), 각흘산(838m)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만나 영평천을 이루며 이동면 소재지를 관통해 흐른다. 영평천은 한탄강의 지류 중 하나. 개천을 따라가노라면 면 소재지와 백운계곡 사이에 줄줄이 늘어선 갈비식당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할머니갈빗집, ○○갈비, 원조○○갈비 등 이름도 다양하다. 포천이동갈비촌을 중심으로 이 일대에서 성업 중인 갈비전문식당은 20여 곳. 이동면 인구가 6천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식당 수가 꽤 많다 싶다.
깊은 두메산골이 소갈비 요리의 본고장으로 떠오르게 된 연유는 뭘까? 포천시에 따르면 이동갈비가 태동한 때는 1950년대 후반이었다. 휴전선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일동면과 이동면 일대에 군부대가 밀집해 있는데 이곳 군인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 있었다. 값싸고 흔한 돼지갈비였다. 그것이 점차 소갈비로 바뀌면서 장교들의 회식 메뉴는 물론이고 병사들의 면회음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군인을 주 대상으로 한 만큼 초창기엔 갈비의 양이 많되 값은 싸야 했다. 이에 맞춰 갈빗대를 잘게 자른 이른바 '쪽갈비'가 등장했다. 작은 갈빗대에 소고기 살을 이쑤시개로 꽂아 이은 10대를 1인분으로 내놓음으로써 식욕이 왕성한 군인들에게 포만감을 안겨줬다. 여기에 특유의 양념을 개발해 첨가함으로써 장병들은 물론 면회객들의 미각을 사로잡았다.
이동갈비가 대중적 사랑을 받은 것은 1980년대부터란다. 1976년 포장도로가 생기고 80년대 들어 등산객과 관광객이 많이 증가하면서 이동갈비는 일반인들을 주 소비자로 하는 지역대표음식으로 부상했다. 30대 나이 때부터 갈비 식당을 운영했다는 '원조이동김미자할머니갈비'의 김미자(84) 할머니는 이렇게 회고했다. "배고프던 시절이었지. 그때는 군인들을 상대로 장사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양이 많아야 했어. 이동갈비가 이만큼 유명해진 것은 다 군인들 덕분이야!"
전성기였던 1980년대의 이 지역 갈비식당은 30여 곳에 달했다. 경제발전으로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고 여행이 일상화하면서 이동갈비를 찾는 외지 손님들의 발길도 대폭 늘었다. 이동갈비 식당들은 기존의 분량 중심에서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으로 선회하며 시대 흐름에 부응했다. 하지만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등의 영향을 받아 지금은 예전보다 식당 수가 다소 줄었다. 포천이동갈비협회 김영일 회장은 "현재 우리 면에 21곳의 식당이 운영 중"이라면서 "업체들은 고급육을 사용하되 갈비의 양과 값을 최대한 차별화해 고객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생갈비 '담백' vs 양념갈비 '구수'
다른 지역의 갈비 요리가 그렇듯이 이동갈비도 생갈비와 양념갈비로 크게 나뉜다. 생갈비는 소고기 원자재를 그대로 사용해 특유의 질감과 맛을 느끼게 한다. 반면에 이동갈비의 진미인 양념갈비는 참기름, 배, 조청, 마늘, 파 생강 등 각종 재료로 만든 양념으로 숙성시켜 달콤함 등 다양한 맛을 낸다. '이맛갈비'의 김승겸(28) 매니저는 "손님 열 분 중 아홉 분이 찾으실 만큼 양념갈비의 선호도가 무척 높다"면서 "이 때문에 이동갈비라고 하면 양념갈비부터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양념갈비 맛은 식당마다 다소 차이가 난다. 양념과 숙성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기름기를 제거한 생갈비에 간장을 비롯해 생강, 마늘 등 채소류와 사과, 배, 키위, 파인애플 등 과일류를 중심으로 20가지 안팎의 각종 재료로 만든 양념을 넣고 3일가량 재어 숙성시킨다. 갈비 맛이 부드럽고 달콤한 것은 고기에 깊이 배어든 숙성 양념 덕분이다.
갈비의 맛과 식감을 더해주는 또 다른 비결은 굽는 재료와 방법. 이동갈비 식당들은 대부분 참숯과 실실이 석쇠를 이용한다. 참숯은 열량이 높아 짧은 시간에 갈비를 구워낼 뿐만 아니라 갈비 냄새도 말끔하게 없애준다. 실오라기를 이어놓은 듯한 실실이 석쇠는 열전도 방식의 구리 석쇠나 '스텐'(스테인리스강) 석쇠와 달리 대류 복사 방식으로 구울 수 있어 고기의 안팎이 잘 구워진 갈비의 맛을 느끼게 한다. 직화구이 방식의 실실이 석쇠를 사용하면 숯불과 갈비 육즙이 조화를 이루면서 소고기 본연의 맛을 향유케 한다.
생갈비의 경우 고기가 금방 익기 때문에 센 불로 살짝 구운 뒤 얼른 꺼내 먹는 게 좋단다. 따라서 잘 타지 않아 여러 대를 동시에 올려놓고 구워도 되는 양념갈비와 달리 생갈비는 한 대씩 올려놓고 그때그때 먹으면 식감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양념 유무 등의 차이만큼 생갈비와 양념갈비는 먹는 방법에서 약간 다르다. 생갈비의 경우 적절히 잘 구워서 소금에 찍어 먹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야 담백한 소고기의 본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양념갈비는 파채나 양파 등과 함께 먹을 때 식감이 더 높아진다. 생갈비와 양념갈비를 동시에 시켰다면 생갈비를 먼저 먹고 그다음에 양념갈비를 먹어야 맛의 담백함과 구수함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밑반찬으로는 도토리묵, 비트무, 무동치미, 냉이나물, 게장, 양파초절임 등이 다채롭게 놓인다. 상추, 마늘, 쌈장도 상차림에 동참한다.
이동갈비는 육질의 고급화를 추구하면서도 '양은 많되 값은 싸게'라는 종전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생갈비는 1인분 300g에 3만3천~3만6천원 정도다. 양념갈비는 1인분 400g에 3만1천~3만2천원선. 이는 1인분 생갈비 150g, 양념갈비 200g을 파는 대도시의 식당과는 상당히 대비된다. 양념갈비가 생갈비보다 양은 많으면서도 값이 싼 이유는 고기가 함유하는 풍성한 양념과 육즙 때문이라고. 양에 치중했던 쪽갈비는 근래 들어 사라진 대신에 1인분에 3대로 갈비의 덩치가 커졌다.
후식으로는 동치미 냉면이나 국수 또는 공깃밥에 된장찌개가 나오곤 한다. 특히 냉면과 국수는 기름진 고기의 맛을 개운하게 해주는 별미다. 기온이 내려갈 때는 따끈한 된장찌개를 찾는 손님이 늘어난다. 이동갈비를 먹을 때 이동막걸리도 한 잔 곁들여주면 금상첨화다. 한 혈육의 형제처럼 둘 다 이동면에 뿌리를 두고 있어 미각의 친숙함이 더하다.
식당에서 만난 손님들은 양과 질, 가격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인다. 지인 5명과 여행 중이라는 조윤자(70·서울 목동) 할머니는 "같은 갈비여도 본고장에서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진다"며 "식후에 둘러볼 주변 명소들에 대한 기대도 크다"고 말했다. 친구 4명과 함께 온 서월석(88·서울 월곡동) 할머니는 "1년에 한두 번은 꽃놀이 삼아 이곳에 온다"고 했다. 서 할머니는 "서울에서는 갈비를 안 먹는데 이곳에서는 꼭 먹는다"며 "치아가 아직은 건강해서인지 씹는 데도 별 지장이 없어!"라며 활짝 웃었다. 1년 전에 수원에서 이동면으로 이사 왔다는 신용철(54) 씨는 "구수한 육즙이 밴 양념갈비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갈비에 곁들여 나오는 시원한 동치미와 같이 먹으니 맛이 더욱 일품"이라면서 "이동갈비는 수원갈비와는 또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 둘레길 갖춘 산정호수…산천경개 관광은 '덤'
금강산도 식후경이렷다! 이동갈비를 맘껏 먹은 뒤에 주변의 볼거리를 즐기면 일거양득으로 기쁨이 배가된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포천에는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구경거리와 힐링코스가 많다.
포천 하면 선뜻 떠오르는 관광지가 산정호수(영북면)와 국립수목원(소흘읍), 백운계곡(이동면), 포천아트밸리(신북면), 허브아일랜드(신북면), 평강식물원(영북면)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명성산 자락에 있는 7만8천여 평 규모의 산정호수는 둘레길이 조성돼 누구나 마음 편히 거닐며 풍경을 완상할 수 있다. 국립수목원이 있는 광릉숲은 조선 세조 때 지정된 왕실 능림으로 국내 최대의 생물다양성 보고(寶庫)다. 1998년 개장한 13만 평의 허브아일랜드는 허브의 원산지인 지중해풍의 허브를 연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등산객들에게는 광덕산과 백운산, 각흘산 외에 명성산(높이 923m)과 국망봉(1천168m), 운악산(935m)이 우뚝 솟아 '어서 오시라'며 손짓하는 듯하다. 이와 함께 비둘기낭폭포 등 한탄강 지질공원 중 포천 지역에 산재한 지질 명소들도 들러볼 만하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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