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입력 2018-04-12 11:46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개 산업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하재영 소설가

담담하게 서술…"동물만이 아닌 사람·존재의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초짜 소설가' 하재영이 갈 곳 없던 치와와를 가족으로 들이게 된 것은 2006년 12월이었다. 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그는 '피피'를 키우며 유기견 문제에 관심을 보이게 됐다. 이후 2013년 동물단체 '팅커벨 프로젝트'와 인연을 맺으면서 동물 문제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동물단체에 후원만 하다가, 구조된 개들을 집에서 임시보호하게 됐어요. 그런데 동물과 삶을 나누고 같이 생활하는 건 정말 다르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문제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개 산업을 파헤친 하재영의 르포르타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창비 펴냄)은 멀게는 12년 전 '피피'와의 만남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지난 수년간 "새끼를 빼는 기계들"이 사는 번식장부터 "세상의 어떤 개도 팔릴 수 있는" 경매장, "버려진 개들의 마지막 정거장"이라는 보호소, "쓸모없어진 개들의 하수처리장" 개농장 등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동물단체 대표, 번식업자, 육견업자, 캣맘 등의 인터뷰를 더해 책을 완성했다. 누구의 미움도 사지 않았고, 지은 죄도 없는 '개별적 존재'들은 무기수로, 사형수로 살다가 결국 생을 마감한다.

책에는 끔찍하고 잔혹한 실태를 고발하는 흑백 사진 한 장 없다. 조민영 화가가 그린 유기견 그림이 몇 점 등장할 뿐이다. 취재 행적과 인터뷰 사이사이에 개 산업을 바라보는 작가의 단상을 배치한 책은 차분한 문체로 그늘진 세상을 펼쳐 보인다. 12일 전화로 만난 작가는 "동물 문제를 자극적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통 동물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연민 때문에 이 문제를 외면하려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더라고요. 의식적으로 제 감정을 절제하려 했어요."

현장 취재를 마친 뒤 최대한 시차를 두고 글을 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대신 "인터뷰이들이 쏟아낸 감정은 다른 층위의 것으로 생각해 그대로 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개와 관련된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중심에 세운 것은 이 책의 특징이다. 동물 학대 실태를 고발하는 글은 원래 동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크지만, 우리네 이야기로 넓히면 좀 더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였다. 작가는 "동물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여기에 자기 삶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개 도살 현장을 촬영했던 사진작가 윤택상의 이야기처럼 "음식은 문화와 습관, 그것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과의 기억, 그 밖에도 많은 것이 들러붙은" 아주 복잡한 문제다.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먹는 것도 자유 아니냐'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개 식용 문제에는 '그럼 소 돼지 닭은 어쩌란 말이냐'는 물음부터 나온다. 작가는 개 식용 문제를 동물권이라는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 삶이 동물의 고통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모종의 의무를 다하려고 애쓰는 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게 작가의 메시지다. "다른 사람들과 동물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나는 동물은 안 좋아해서' '동물에 관심이 없어서'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책은 동물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와 같은 사람, 존재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316쪽. 1만5천원.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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