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시리아내 일촉즉발…"냉전종식 후 충돌위기 최고조"
화학무기 참사 뒤 '미사일폭격'·'원점타격' 치고받는 위협
미·영·불 합동공습 가시화…미군함 전개설에 시리아 군시설 비워
서방 vs 러·이란·시리아…유엔총장 "통제불능 빠질라" 전전긍긍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시리아 내 화학무기 사용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미국과 러시아가 심상치 않은 긴장을 빚어내고 있다.
양국이 무력사용, 반격에 대한 자극적 발언을 쏟아내자 세계 양강의 충돌위기가 냉전 이후 최고조에 달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시리아에 미사일이 날아갈 것이다. 러시아는 준비하라"고 두 말이 필요없는 위협을 가했다.
국제사회는 두 강대국 간 갈등이 통제 불능의 상황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보고 우려를 표시했다.
크림반도 사태, 미국대선 개입의혹, 핵무기 경쟁, 영국 이중간첩 암살시도 등으로 이미 적대관계가 깊어진 상황에서 독가스 참극이 기폭제가 됐다.
지난 7일 시리아 반군 지역 두마에서 발생한 화학무기 공격 후 상호비방과 군사적 위협은 무력사용 계획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이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의 선봉에 섰다.
그 뒤를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영국과 프랑스가 받치며 보복타격 태세를 갖춰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며 48시간 이내에 무력사용과 관련한 중대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밝혔다.
미국 매체들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시리아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유도 미사일 구축함 한 척을 시리아 해안으로 이동시켰다.
미 해군 구축함 도널드 쿡도 이미 지난 11일 지중해 동부 해상에 배치됐고, 구축함 포터도 시리아에 며칠 내로 도착할 것으로 예측됐다.
미국의 핵 추진 항모 해리 트루먼 항모전단은 11일 모항인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항을 출항, 지중해 해역으로 향한다고 보도도 나왔다.
프랑스는 지중해 동부에 배치된 미사일 장착 군함 아키텐호를 주목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시리아 정권이 화학무기 공격을 한 것으로 입증되면 프랑스의 '레드라인'(금지선)을 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프랑스는 이번 화학무기 공격의 '발사대'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두마이르 군 비행장에 대한 공습도 추진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역시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밝히고 12일 긴급 내각회의를 소집했다.
영국 매체들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의회의 승인을 없이도 시리아에 전투기를 보내 공습을 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시리아 정권이나 화학무기와 관련한 시설들을 겨냥한 미국, 영국, 프랑스의 합동작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중해 동부와 맞닿은 시리아 항구도시 라타키아에 공군기지를 둔 러시아는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시리아 인접국 레바논 주재 러시아 대사 알렉산드르 자시프킨은 헤즈볼라 매체 알마나르TV와 인터뷰에서 "미군이 공습한다면, 미사일이 요격당할 것이고, 발사 원점도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러시아가 미국 미사일이 발사된 전투기나 군함을 타격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셈이다.
미국은 1년 전 시리아군에 의한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하자 지중해 함대로부터 59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시리아 공군기지에 쏟아부었으나 시리아 주둔 러시아군은 당시 이를 요격하지도 않았다.
러시아 대사의 발언이 나오고 나서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오전 트위터 계정에 "멋지고 새로운, '스마트'한 미사일이 갈 것이니, 러시아는 준비하라"고 썼다.
그러면서 "너희(러시아)는 자국민을 죽이는 걸 즐기는 '독가스 살인 짐승'의 조력자가 되면 안 된다"고 비난하는 한편 "러시아와 우리의 관계는 냉전 시대를 포함,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악화했다"고 적었다.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아 또다시 비난에 나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궁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에 대해 "우리는 트위터 외교의 참여자가 아니며 신중한 접근법의 옹호자들"이라면서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시리아) 상황에 해를 끼칠 수 있는 행보를 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러한 상황 전개에 "러시아가 트럼프의 트윗 위협을 맞받아치면서 미-러 갈등이 더욱 고조됐다"고 11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시리아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가 직접 충돌할 가능성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러시아를 지지하는 다른 국가들의 시리아 내 세력 다툼도 가열될 조짐이다.
미국 등 서방의 시리아 공습 경고에 맞서 시리아의 동맹 축인 이란과 레바논 무장 정파도 시리아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한 고위급 인사는 최근 시리아를 방문, 지난 9일 발생한 시리아 중부 T-4 공군기지 공습과 관련해 "이 공습은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의 범죄행위며 이란은 이 범죄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당시 공습으로 이란 장교 4명이 숨진 것에 대한 보복을 시시한 대목이다.
이스라엘은 이에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란이 시리아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맞받았다.
이에 따라 시리아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을 주축으로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 대 러시아를 필두로 이란, 시리아 간 대결구도가 더욱 부각된 형국이다.
국제사회는 이처럼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급상승하는 통제 불능의 상황을 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이 시리아 사태를 두고 교착 상태에 빠진 것에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공습 예고를 두고 미국 정계에선 반대 의견도 나온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시리아에 대한 그 어떤 군사 행동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날 시리아 두마 지역 환자들의 증상이 독성물질에 노출됐을 때 나타나는 징후와 일치한다고 발표하면서 그 공격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다만, WHO 요구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최소한 몇 주가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리아 정권은 현재 미국의 공습에 대비해 전군에 경계령을 내렸고 군기지 등 주요 군 시설을 비웠다고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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