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한국서 태어나 행복…허락되는 날까지 노래"(종합)

입력 2018-04-11 18:10
수정 2018-04-11 19:42
조용필 "한국서 태어나 행복…허락되는 날까지 노래"(종합)



데뷔 50주년 간담회…"꼰대 소리 듣지만…유튜브로 음악 들으며 감각 유지"

"애착가는 곡은 비행기서 만든 '꿈'…죽을 때까지 배우다 끝날듯"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행복합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답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가왕' 조용필(68)의 데뷔 50주년 소회에서는 진심 어린 고마움이 묻어났다.

11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데뷔 50주년 기자간담회를 연 그는 "제가 50년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면서 "그저 좋아서 음악을 했는데, ('가왕', '국민 가수', '20세기 최고의 가수'란) 별의별 호칭을 붙여주셔서 제겐 부담이었다"고 웃음 지었다.

조용필의 기자회견은 지난 2013년 신드롬을 일으킨 19집 '헬로' 발매 쇼케이스 이후 5년 만이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가 진행을 맡아 조용필의 7집 수록곡 제목인 '어제, 오늘, 그리고'란 테마로 지난 시간을 훑었다. LP 카페 분위기의 세트장에서 '차 한잔 할까요?'란 부제로 진행돼 '넘버 원', '세대 통합 능력자' 등 해시태그(#)별로 1시간 30분 넘게 긴 대화가 이어졌다.

"오늘 얘기하자면 밤을 새워도 다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나이가 아주 많기 때문에 그만한 인생의 경험이 많을 테니까요."

1968년 록그룹 애트킨즈로 데뷔한 조용필은 김트리오, 조용필과그림자 등의 밴드를 거쳐 솔로로 나섰다.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한 것을 시작으로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으로 국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우리 시대 스타 탄생의 서막을 알렸다.

그는 "5~6살 때 시골 농촌에서 어떤 분이 부는 하모니카를 통해 처음 음악에 대한 느낌을 받았다"며 "'푸른 하늘 은하수~'라고 동요를 하모니카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음악과 첫 인연이었다. 이후 축음기로 가요를 접했고 라디오로 팝을 알게 됐고 서울에 왔을 때 형이 치던 통기타가 있어서 기타를 치게 됐고 그것이 죽 연결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음악을 취미로 하려 했는데, 빠져서 열심히 했다"며 "미8군에 잠깐 엑스트라로 나오라고 해서 1968년 12월에 기타를 친 적이 있다. 그것에 큰 매력을 느껴서 음악을 해야겠다 싶었다. 다른 비결은 없다. 하다 보니 새로운 걸 계속 발견하고 그때 충격을 계속 받았다. 지금도 저는 계속 배우고 있다. 아마 죽을 까지 배우다가 끝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배움의 길이라고 했지만 그는 50년간 19집(10집이 파트.1과 파트.2로 구성)까지 총 20장의 앨범을 내며 수많은 최초, 최고 기록을 세웠다.

국내 최초 단일 앨범 100만장 돌파, 최초 누적 앨범 1천만장 돌파, 일본 내 한국 가수 최초 단일 앨범 100만장 돌파, 한국 가수 최초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공연, 대중가요 최초 '친구여' 교과서 수록, KBS '가요 톱텐' 통산 69주 1위 등 그의 기록은 셀 수가 없다.

조용필은 "사실 전 정상이 뭔지, 기록이 뭔지 잘 모른다"며 "오랫동안 하다 보니 그런 것이지, 솔직히 뭔가를 위해 음악을 한 것은 아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좋은 음악을 내면 감동하고, 왜 나는 안될까 고민하고, 그렇게 음악이 좋아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겸손한 답변과 달리, 컬러TV 시대가 도래한 1980년대에 '오빠 부대'를 거느린 그는 수많은 명곡을 낳으며 팝에 뒤처졌던 가요의 위상을 높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록을 기반으로 팝발라드, 포크, 디스코, 펑크, 트로트, 민요, 동요까지 국내 가수 중 가장 많은 장르를 시도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앨범을 묻자 그는 "대부분 정성들여 만들어 정말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곡으로 따지자면 13집의 '꿈'이다. 이 곡은 12집의 '추억 속의 재회'와 함께 만들었는데 어떤 걸 낼까 하다가 '꿈'이 더 좋다고 해서 반대로 '추억 속의 재회'를 먼저 냈다. '꿈'은 1989년에 녹음하고 1991년에 냈다"고 소개했다.

"'꿈'이란 노래는 제가 비행기 안에서 만들었어요. 요즘도 연습할 때 가장 먼저 부르죠. 목소리 푸는 곡으로요. 멜로디 라인이 어렵지 않잖아요. 이 곡과 '단발머리'가 목 풀기에 좋아요."



특히 그의 음악의 강점은 시대와의 교감이었다. 그는 63세의 나이에 19집의 '헬로'와 '바운스'를 히트시키면서 혁신적인 사운드로 '신구 세대 통합'이란 문화 현상도 만들어냈다.

그는 젊은 세대가 열광했다는 말에 "'바운스'를 통해 몰랐던 사람들이 알 수 있었지, 열광은 아니다"고 웃으며 "'나이가 들어가는데 내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으려면' 하고 고민하다가 '젊은이들이 나를 기억한다면, 그들이 60~70세가 될 때까지 나를 더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로 유튜브 등을 통해 요즘 음악과 공연을 꾸준히 듣고 보는 것을 꼽았다.

"음악을 매일 들어요. 유튜브를 클릭하면 최근 콘서트들이 죽 나오죠. 많이 보고 많이 들어요. 요즘 라틴 음악이 대세여서 접하고, 가끔 스크립트 음악도 듣고, 요즘은 호주의 시아 앨범도 전체를 다 들어요. 특히 제가 보는 것은 코드나 화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이런 부분이죠."

임진모 씨가 엑소, 방탄소년단 등의 음악도 듣느냐고 묻자 그는 "현재 유명하면 뭔가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것"이라며 "엑소, 방탄소년단, 빅뱅 등의 공연을 유튜브로 보면 그 친구들이 왜 유명한가 분명 이유가 있다. 난 정말 다행이다. 지금 태어났으면 키도 작고 비주얼 쪽에서 안된다. 요즘 친구들 잘생겼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꼰대' 세대가 된 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면서 "제가 지금 꼰대 소리를 듣고 있다"고도 했다.

"꼰대는 누구에게나 당연히 오는 것이잖아요. 그걸 거부하는 것은 아니에요. 전 일부러 '내일모레면 내가 70이야'라고 말합니다. 이 정도로 나이 많아도 열심히 하고 있어, 음악 좋아하고 있어라고요."



꾸준히 여러 세대와 소통하는 음악을 냈기에 단연 관심은 새 음악이었다. 그는 19집의 큰 인기가 부담이 너무 커서 '20집은 더 잘해야지'란 생각에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며 공연 준비를 위해 현재는 신곡 작업을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수많은 곡을 접하고 직접 만들면서 6~7곡이 준비됐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못 내는 성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20집이 올해는 못 나올 것 같아요. 지금껏 (싱글) 음원을 낸 적이 없는데, 혹 음원을 낼 수도 있지만요. 6월에 봄 투어 끝나고 2개월 반 쉬는데 그때 또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인생에 관한 음악을 발표하라는데, 전 속으로 '웃기고 있네'라고 생각해요. 음악은 음악이지, 그 자체가 세월이 지나면 역사니까요. 전 조금 다른 생각을 해요. 지금 하는 것은 미디움 템포에서 조금 빠른 곡이죠. 요즘 사운드가 EDM인데 전 앨런 워커 같은 프로듀서가 제 취향에 맞아요."

전주만 들어도 아는 히트곡이 70~80곡 되다 보니 그는 한때 뮤지컬 제작을 준비한 적도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많이 좋아한다"며 "음악이라는 것이 들어있는 것은 다 찾아다니는 편이다. 한때 브로드웨이에서 한달 내내 본 경우도 있다. 어떤 뮤지컬은 11번씩 보며 하루는 무대, 하루는 세트, 하루는 음향을 봤다. 그래서 뮤지컬을 한번 만들어보려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아무래도 노래는 그렇게 힘이 없어서 못할 것 같고, 노래를 그만둔다면 뮤지컬 쪽 음악 프로듀서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1991년 13집의 '꿈'을 끝으로 방송 출연을 하지 않아 신비주의 이미지가 있던 조용필은 이날 사생활에 대한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변했다.

"술은 2000년대 들어 조금씩 줄여 2년 전부터는 몇달에 한번 마신다", "어렸을 때 당구를 쳤는데 80에서 120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와이프가 있을 때는 (요리를) 도와줬지만, 그 이후론 안한다",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프리카를 한번 다녀와서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본다"….

심심한 일상이지만 공연이 있을 때면 6~7개월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해 바쁘게 돌아간다는 그는 5월 12일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땡스 투 유'(Thanks to you)란 타이틀로 기념 투어의 막을 올린다. 그가 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것은 이번이 7번째다.



조용필은 "'땡스 투 유'를 타이틀로 정한 것은 (기타리스트로 출발해) 노래한 것은 40여 년이지만, 팬클럽도 생기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러니 당신이 있었기에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묻는 질문에도 "가수면 다 똑같을 것"이라며 "공연에서 관객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더 이상 뭐가 없다, 제일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연습을 통해 목소리를 유지하고 관리하는데 힘쓴다고 말했다.

"제일 나이 먹으면 안되는 부분이죠. 노래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부분이 가장 취약한지 알 수 있어요. 나이가 들면 중저음이 떨어지는데, 사무실 위 스튜디오에서 중저음만 골라 집중적으로 연습해요. 호흡과 배의 힘 등을 스스로 느껴야 하거든요."

그는 시간에 대한 압박감, 인간으로서의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지 묻자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씀, 맞습니다"라고 수긍했다. 19집 인터뷰 때 그는 "내게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폭탄을 들고 뛰어들어야 한다. 벽이 깨지든 내가 깨지든"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저는 폐 끼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저 사람 노래를 들으며 살았는데 그만두면 난 뭐야'란 생각을 할까봐 이게 가장 두렵습니다. 저는 노래가 안되는데 좋아해준 분들이 실망할까봐…. 제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지막 공연을 봤는데, 전 저렇게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팬 입장에선 제가 그만두면 배신당하는 느낌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허락되는 날까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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