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세자 미·영·프 순방 뒤 이란핵합의 수정 요구

입력 2018-04-11 16:34
사우디, 왕세자 미·영·프 순방 뒤 이란핵합의 수정 요구

핵협상 당사국 돌며 대규모 계약 체결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수정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난 한 달간 핵협상에 직접 참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영국, 미국, 프랑스를 차례로 순방한 뒤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사우디의 이런 주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보조를 맞춘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달 12일까지 햅합의를 수정하는 협상에 이란과 유럽연합(EU)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를 파기하겠다고 위협하는 참이다.

사우디는 2013∼15년 진행된 이란 핵협상을 반대했지만 합의가 성사된 이후엔 공개적으로 이를 별다르게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정권이 교체된 미국이 핵합의를 재협상하지 않으면 파기하겠다고 한 시한이 다가오면서 미국을 거들어 '숙적' 이란을 몰아붙이는 데 가세한 셈이다.

프랑스를 방문한 무함마드 왕세자는 10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2025년 이후엔 이란이 겨우 며칠 안에 핵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면서 "그 파장을 고려 안 하는 이란은 핵폭탄 제조에 매진할 것이고 그때야 세계는 현실을 직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란이 바로 오늘 핵폭탄을 만들겠다고 결심하면 1∼2년이 걸릴 테고, 이를 막을 시간이 충분하지만 핵합의가 만료되는 2025년 이후엔 단지 며칠 안에 만들 수 있다"면서 핵합의가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핵합의에 따르면 이란은 핵활동의 상당 부분을 2025년부터 제한받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재협상을 통해 이런 일몰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 발언은 미국의 요구와 정확히 같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도 10일 "이란 핵합의는 부족하고 개선돼야 한다"며 "합의를 했으면 이를 다시 손보지 않아야 한다는 게 유럽 측의 입장인 것 같다"면서 유럽 측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핵협상에 참여한 주요 서방국가 정상을 만나 이란의 위험성을 부각하고, 핵합의 수정 또는 재협상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그러면서 이들 국가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8∼10일 프랑스 방문에 맞춰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프랑스 토탈과 석유화학 단지를 조성하는 계약(72억 달러)을 맺는 등 양국 기업이 모두 180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 20건을 성사했다.

앞서 지난달 영국을 방문했을 때는 영국 방산업체 BAE시스템스와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 48대(160억 달러 추정)를 구매하는 계약과 20억 달러의 통상 계약을 맺었다.

3주간의 방미 기간 미국 정부는 사우디에 곡사포, 자주포 등 13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사는 계약을 승인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해 2월 사우디가 미국에 2천억 달러를 투자하는 협정을 체결했지만 이 규모가 4천억 달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 적대적인 트럼프 정부와 발을 맞춘 사우디의 '외곽 지원'으로 이란 핵협상의 장래는 더 어두워졌다.

로이터통신은 11일 "유럽 외교관들 말로는 유럽 측이 핵협상과 관련해 11일 워싱턴에서 미국과 논의하는 데 이란 핵합의가 결국 구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미국과 유럽이 지난달 핵합의 재협상을 논의했는데 미국이 이 논의가 결렬될 때를 대비해 비상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측은 이란 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해 핵합의를 수정하는 대신 미국이 핵합의를 파기하지 않는 중재안을 미국과 이란에 제시했다.

이란은 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이 주권에 속하고 핵탄두를 장착할 가능성이 없다면서 이 안을 거부한다.

알리 아크바르 셀레히 이란 원자력청장은 8일 국영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란 핵협상 문제에서 유럽이 미국의 뒤를 따른다면 미국의 궤도를 도는 위성임을 자인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