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장서 껴안고 "모텔서 쉬다 가자"…여직원들 "그만둬야 하나"
강원 모 의료원, 성추행·성희롱 등 인권침해 심각 확인
가해자 인사 조처·재발방지대책 마련 권고에도 뒷짐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강원도 모 의료원에서 근무하던 30대 여직원이 같은 부서 상사로부터 6개월 동안 상습적으로 성추행당했다는 사실을 밝힌 가운데 이 의료원 내에서 성추행과 성희롱 등 인권침해가 심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도 인권보호관은 의료원 인사규정에 따라 가해자들에 대한 인사 조처와 성폭력 관련 규정·지침·매뉴얼 보완 등을 권고했으나 의료원 측은 무엇 하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11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강원도 모 의료원 내 성희롱에 관한 인권보호관 결정문을 보면 원무팀 소속 조모(41)씨는 입사 초기의 타 부서 여직원을 당구장에서 껴안았다.
당황한 이 여직원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나'라는 자괴감을 느꼈다.
상조회 총회 후에는 저녁 자리와 노래방 회식에서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어깨동무를 하는 등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기도 했다.
같은 팀 부하 직원에게는 찜질방에서 신체접촉으로 불쾌감을 주고, 평소에도 대화 중 성적인 언사로 희롱했다.
당시 원무팀장이었던 심모(56)씨는 이 부하 직원에게 퇴근 후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차에 태우고서는 집을 지나쳐 무인모텔 앞까지 데리고 가 "쉬었다 가자"며 성적 수치심을 줬다.
심씨는 또 노래방에서 남녀 간에 짝을 지어 블루스 춤을 강요하고 여직원 엉덩이 등을 스치듯 만졌다.
피해자이자 최근 의료원 내 성폭력 실태를 폭로한 김모(30·여)씨는 당시 자신이 겪은 이 같은 성폭력에 대해 인사 노무 담당자 홍모(49)씨에게 내부 고충처리절차를 상담했다.
하지만 홍씨는 여성 관련 성 고충상담 처리절차에 지정된 상급자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고, 가해자로 지목된 심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심씨가 곧장 남성 직원들만 모아 "김씨가 외부에 알리려 하니 조심하라"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직원들 사이에 김씨의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2차 가해가 발생했다.
김씨로서는 내부 고충처리절차에 불신을 느끼고 강원도 인권센터에 인권침해 구제 신청하고 경찰에 고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인권보호관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두 달여의 조사 끝에 해당 의료원에 조씨, 심씨, 홍씨 세 사람을 인사규정에 따라 인사 조처와 대기발령 등 이격 조치에 대한 세부 절차가 포함된 관련 규정·지침·매뉴얼 보완을 권고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다른 부서로 자리만 옮겼을 뿐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다.
조씨는 이달 9일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가 직원들 사이에서는 육아휴직 기간에는 해고가 불가능한 점을 이용한 꼼수 휴가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성 관련 비위를 다루는 인사위원회에서도 지역 연고가 없는 외부전문가 참여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절차 등 규정을 정비하라고 권고했으나 최근 열린 인사위원회에서는 외부위원으로 지역 인사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인사위원회 외부위원들과 의료원 사람들이 다 알고 지내는 사이로 가해자들과도 친하고 술자리도 동석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며 "온정으로 징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 신뢰조차 어렵다"고 비판했다.
인권보호관은 또 종합적인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 도지사에게 제출할 것을 권유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의료원 관계자는 "재발방지대책은 내부에서 정리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얘기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인사위 외부위원들이 지역 인사들로 구성돼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답변을 피했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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