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 실시해야"…연예계, 근로시간 단축에 비상
"특수 직종 감안해야…매니저, 다 계약직으로 돌려야 할 판"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업계 특수성을 전혀 모르는 처사죠. 탄력 근로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기획사를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을 앞두고 연예계에 비상이 걸렸다. 법정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단축되면 매니저를 포함해 스태프를 배 이상 늘려야 하는데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예계 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은 필요하지만, 일괄적으로 근로시간을 규정하면 버텨낼 기획사가 없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영화, 드라마 촬영 현장도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촬영 외에 각종 행사와 이벤트 등이 많은 연예기획사는 '주당 52시간 근로법'을 지켜서는 일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교대 근무 불가능…탄력 근로 인정해야"
개정 근로기준법은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며, 근로시간 제한을 받지 않고 장시간 근로를 시킬 수 있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26개 업종에서 5개 업종으로 축소했다. 그간 '주당 근로시간'이라는 규정 자체가 없었던 영화, 방송, 연예기획사 등이 모두 특례업종에서 빠졌다. 다만 각각 유예기간이 있어 연예기획사의 경우는 2018년 7월1일부터 주당 68시간 적용, 2020년 1월1일부터 주당 52시간이 적용된다.
가요기획사들이 모인 단체인 한국매니지먼트연합(한매연)은 11일 "연예기획사는 특수 직종이어서 근로시간이나 근로 기간을 일괄적으로 정하기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한매연은 "가수들의 경우 앨범 활동기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활동이 끝나면 장기간 휴식을 취하는 패턴"이라며 "그들과 함께 다니는 매니저들에게 일괄적으로 법정 휴식시간을 보장하라고 하면 업무가 마비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주 문체부에서 의견을 물어왔고,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근무 시간의 탄력적 운용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제조업처럼 교대 근무가 가능한 분야가 아니다"라며 "얼핏 매니저를 많이 뽑아서 현장 교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센스다. 업무의 연속성과 경험이 중요한 분야다"라고 강조했다.
◇ "인건비 감당 안돼…매니저 뽑기도 힘들어"
한 대형 배우기획사 대표는 "문제가 심각하다.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려면 매니저를 더 뽑아야 하는데 인건비 감당이 안돼서 매니저들을 다 계약직으로 돌려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우리 회사의 경우 배우가 서른 명이 넘는데 희한하게도 배우들이 일할 때는 한꺼번에 일을 하고 일이 없을 때는 또 한꺼번에 쉰다"며 "매니저들을 배우 스케줄에 따라 분산 배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매니저를 구하는 것 자체도 어렵다. 요즘은 힘들다고 며칠 일 하다가 관두는 경우가 많다"면서 "숙련된 매니저들을 데리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탄력 근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기획사들이 모인 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의 손성민 대표는 "법정 근로시간 52시간에는 이동시간도 포함된다"며 "촬영장 가다가 매니저가 시간이 되면 차량 시동을 끄고 내려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손 대표는 "현재로는 다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아직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를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 문체부 TF 가동…"충분한 논의 필요"
이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콘텐츠 업계 고용 체질 개선 TF'를 구성하고 11일 첫 회의를 소집한다. 영화프로듀서조합, 모바일게임협회, 애니메이션제작협회, 음악레이블산업협회, 연예제작자협회 등 관계자들이 참석해 업계의 상황을 전할 예정이다.
한 대형 가요기획사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해 ▲휴일 또는 공휴일 근무시 평일 대체휴가제도 실시 ▲야근 발생시, 익일 출근시간 조정 가능 ▲매니저의 경우, 재량 근로 및 탄력근로 실시 ▲매니저 등 활발한 채용 지속 실시 계획을 밝혔다.
'주당 52시간 근로'를 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어렵지만, 연예계 산업 전체를 봤을 때 근무환경 개선은 장기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매니저들이 쉬지 않고 일하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도 왕왕 있고, 업계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장 스태프의 처우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또다른 기획사 관계자는 "그래도 법이 시행되면 안 따를 수 없는 것 아니겠냐"면서 "아직 유예기간이 있어서 당장 피부에 와 닿지는 않지만 지금부터 대비를 해야 하기에 회사 차원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결국은 좋은 쪽으로 가려는 과정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현장의 상황을 모르고 일괄적으로 법을 적용해서는 부작용이 심할 것"이라며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prett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