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불안으로 옥죄는 스릴러 소설 '사흘 그리고 한 인생'

입력 2018-04-11 07:05
수정 2018-04-11 09:13
죄책감과 불안으로 옥죄는 스릴러 소설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프랑스 인기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 신작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피에르 르메트르의 장편소설 '사흘 그리고 한 인생'(열린책들)이 국내 번역 출간됐다.

이 작품은 작가의 최고 히트작 '오르부아르'(2013)에 이어 2016년 발표된 소설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라 프랑스에서 현재까지 35만 부가 팔려나갔다.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과 영국추리작가협회상도 수상한 드문 이력의 작가답게 이 소설 역시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가는 스릴러 형식 안에 인간의 죄와 구원에 관한 심오한 질문을 담았다.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일반적인 추리물과는 다르다. 이 소설의 묘미는 주인공이 홀로 죄책감을 끌어안고 죄가 곧 탄로 날 것이라는 두려움, 불안에 시달리는 복잡한 심리와 감정을 독자들이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작가는 사건을 둘러싸고 사람들의 의심이 종횡무진 뻗어 나가는 광경을 보여주며 주인공의 불안과 공포감을 점점 더 조여나간다.

이야기는 1999년 '보발'이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열두 살의 '앙투안'이 옆집의 여섯 살 꼬마 '레미'를 우발적으로 죽이면서 시작된다. 사건의 발단은 앙투안의 유일한 친구 같은 존재였던 개의 죽음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변변한 친구도 없이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던 앙투안은 자신을 특히 따르던 옆집 개를 사랑했고, 이 개가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 직후 주인인 레미의 아버지에게 총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 그런 그의 앞에 레미가 나타나자 우발적으로 때렸고 아이는 그대로 숨을 거둔다.

너무나 놀라운 이 상황에 당황한 앙투안은 일단 레미의 시신을 숲 속 깊은 곳에 감춘다. 마을에서는 레미가 몇 시간 동안 보이지 않자 당국에 신고하고, 군경 수색대가 아이를 찾으러 마을에 들어온다. 앙투안은 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러 오는 환각에 시달리고 잠들 때마다 레미가 나타나는 악몽을 꾼다. 그러나 갑자기 천재지변으로 폭우와 태풍이 몰아치며 사건의 국면이 전환된다. 주민들이 모두 큰 피해를 입어 레미의 시신을 찾는 일은 잠정 중단된다.

이 사흘간의 이야기 이후 앙투안의 얄궂은 운명은 빠르게 펼쳐진다. 12년이 흘러 고향을 떠난 앙투안은 의사가 되어 해외로 떠나려 하지만, 잠시 들른 고향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12년 전 묻혔던 레미의 시신이 숲 속에서 발견되고 앙투안의 공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운명을 체념하고 고향에 눌러앉아 조용히 살아가는데, 어느날 자신의 과거를 둘러싼 놀라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1951년생인 작가 르메트르는 55세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 늦깎이로 데뷔했다. 이후 추리소설을 잇따라 발표해 큰 인기를 끌며 60대 후반인 지금까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르부아르'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화재의 색깔'을 발표했는데, 번역자인 임호경은 두 작품 사이에 나온 이 소설 '사흘…'을 "일종의 간주곡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가볍게 손을 풀기 위한 소품 같은 인상도 주지만, 그 완성도와 깊이에 있어서는 르메트르의 어떤 작품에도 뒤지지 않는 걸작"이라고 평했다.

소설 '오르부아르'는 영화 '맨 오브 마스크'로 제작돼 곧 한국에서 개봉하는데, 이 작가에 관심을 갖게 된 독자라면 신작 '사흘…' 역시 읽어볼 만하다. 뛰어난 이야기 솜씨를 지닌 작가의 필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20쪽. 1만2천800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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