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HK PD "윤동주 시인 인체실험 사망설 단정 어려워"

입력 2018-04-10 11:48
수정 2018-04-10 15:35
전 NHK PD "윤동주 시인 인체실험 사망설 단정 어려워"

윤동주 다큐 제작한 다고 기치로, 저서 '생명의 시인 윤동주'서 오류 가능성 지적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윤동주(1917∼1945) 시인이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인체실험을 당하다 숨졌다는 설을 100% 단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 NHK에서 PD로 일하며 KBS와 공동으로 다큐멘터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을 제작하는 등 오랫동안 윤동주 관련 자료를 조사해 온 다고 기치로 씨는 신간 '생명의 시인 윤동주'(한울)에서 인체실험 사망설의 오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역사에 대해 엄숙한 자세, 좀 더 엄밀한 객관성을 가지고 일하고자 한다면, 논리의 근본이 된 '가정'에 앞서 여전히 넘어야 할 몇 가지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선, 이것이 최대의 '벽'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시신에 사반(死斑)과 같은 의문사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윤동주의 유해를 거둔 윤영석(아버지)과 윤영춘(당숙) 두 사람은 시신이 깨끗했다고 증언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를 들어 대용혈액으로서 바닷물을 주입한 것이 사인이라면 그에 따른 흔적은 시신에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 "전후에 미군 등 일본 점령군이 집행한 전범을 재판하는 극동국제군사재판 중 주로 BC급 재판이 열린 요코하마 군사법정에서 이 규슈대 생체해부 사건과 관련해 후쿠오카 형무소에도 의혹이 눈길이 쏠렸다. 왜냐하면 후쿠오카 형무소에도 소수의 미군 포로(생체실험 사건과는 무관)가 수용되었기 때문"이라며 "그 집요한 심판의 장에서도 후쿠오카 형무소는 유죄를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인체실험설의 주요 근거로 꼽히는 윤동주의 사촌 송몽규의 증언 내용에 관해서도 이론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영춘은 윤동주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을 당시 같은 형무소에 있던 송몽규가 면회에서 "저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 모양이 되었고 동주도 이 모양으로…"라고 말했다고 1976년 발표한 '명동촌에서 후쿠오카까지'라는 글에서 회고한 바 있다. 이에 관해 저자는 "송몽규의 증언으로 후세 사람들은 온전히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서의 인체실험에 눈을 돌리고 있는데, 송몽규는 그것이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분명 후세 사람들의 선입견이 개입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944년 4월 28일 형정 문서에 장티푸스 등의 백신 주사를 실시하라고 통지한 기록이 있다며 "송몽규가 말한 이름 모를 주사가 형무소 내에서 이뤄진 의료 행위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동주의 죽음의 진상은 여전히 수수께끼다"라며 "하지만 지금까지 더듬어온 검증 과정에서 항간에 쉽게 회자되기 쉬운 다양한 '설'에 대해 세부 디테일의 오류와 불확실성을 지적해온 셈이며, 진실로 향하는 길을 열어온 셈"이라고 덧붙였다.

저자는 또 이 책에서 윤동주의 도시샤대학 동급생 모리타 하루 씨의 말을 빌어 당시 일본인 교수가 윤동주에게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자 윤동주가 "그런 마음으로 학교에 온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윤동주가 문학을 배우고 싶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일본 유학을 온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자필 시집 원고 표지에 '병원(病院)'이라고 썼다가 지운 흔적을 발견했다며 윤동주가 깊은 고뇌를 통해 도달한 곳이 '죽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생명'이었다고 설명했다.

320쪽. 2만6천원.

mi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