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남중국해·통상문제 동시 충돌…셈법 복잡해진 아세안
무역전쟁 현실화 땐 경제성장세 '발목'…일부 수출 반사이익 기대
미중 항행의 자유 놓고 '강 대 강' 대결에 아세안 '분열' 커질수도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통상과 안보, 두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동시에 고조되면서 그사이에 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셈법이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강한 회복세를 보이는 아세안 경제가 핵심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현실화하면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국가도 있다.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놓고 두 강대국이 무력 대치 양상까지 보이는 안보 문제에는 아세안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
이들 사안을 놓고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10개 아세안 회원국의 이해득실이 엇갈려 한목소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을 우군으로 확보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안보 외교전이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은 지난 6일 싱가포르에서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열어 경제 현안을 논의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깊어지는 통상 갈등에 대해 드러내놓고 어느 한쪽을 비판하거나 편들지 않았다.
아세안은 공동성명에서 "아세안이 2017년 5.2%의 강한 경제 성장을 한데 고무됐으며 이 성장 기세를 올해도 지속하기를 기대한다"면서 국제 경제 회복과 세계 교역 확대 등을 성장 동력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성장과 개발의 중요한 엔진인 국제 교역과 투자에 대한 아세안의 헌신을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싱가포르의 헹 스위 킷 재무장관은 기자들에게 "부상하는 보호주의의 위험과 무역 분쟁 악화 가능성에 대해 경고음을 냈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일간 마닐라타임스는 8일 사설을 통해 아세안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다른 어느 지역보다 잃을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미국은 각각 아세안의 제1위, 4위 교역 상대국이다. 미국과 중국이 아세안 전체 교역의 약 2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 위축은 아세안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상호 보복 관세가 실제 이뤄지면 그 틈바구니에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태국은 전자제품, 기계류, 항공기 부품, 고무 타이어 등의 수요를 잡는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투자은행 CIMB의 분석도 있다. 반면 아세안의 대중 중간재와 자본재 수출에는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중국은 미국과의 통상 갈등을 아세안과의 관계 증진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8일 보아오 포럼 참석차 중국을 방문 중인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를 만나 싱가포르가 중국과 아세안의 조정자로서 양측 관계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하고 보호주의에 반대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는 항상 다자간 교역 시스템과 법규 기반의 국제질서를 지지한다"고 화답했다.
이번 보아오 포럼에는 2018년 아세안 의장인 리셴룽 총리는 물론 지난해 아세안 의장으로 친중 외교 노선을 걷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참석해 중국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에 무역전쟁의 전운이 짙어진 가운데 두 강대국의 항공모함 전단이 최근 동시에 남중국해에 진입하는 등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놓고도 정면으로 맞서 아세안의 대응이 주목된다.
필리핀의 경우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2월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기지화와 관련,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물론 중국과 남중국해 자원 공유를 추진하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 편을 계속 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강화 행보에 강하게 반발하는 베트남은 미국과의 안보 연대가 중요하지만, 수출 의존적인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와 싸워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사태는 아세안 내 친중, 반중 회원국 사이에 대처 수위를 놓고 가장 큰 이견을 노출하는 사안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할수록 아세안의 분열이 커질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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