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짐승'이라 비난 아사드 운명은…푸틴 손에 달렸나

입력 2018-04-09 11:53
트럼프가 '짐승'이라 비난 아사드 운명은…푸틴 손에 달렸나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에 격분한 트럼프, 철군카드 변화여부 주목

미국 빠진채 시리아 미래 논의한 러·이란·터키…푸틴이 키 쥘 듯

(서울=연합뉴스) 황정우 기자 = "인정하기에는 불쾌하고 도덕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지만 미국은 시리아의 미래에 바샤르 알아사드가 있다는 전제 아래 시리아 정책의 기반을 둘 필요가 있다."

로이터통신의 칼럼니스트 다니엘 드페르티스는 최근 기고에서 "워싱턴이 원했던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트럼프 정부에 제시될 시나리오"라며 이같이 관측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동구타에서 화학무기 공격으로 어린이 등 민간인 수십명이 목숨을 잃자 아사드를 '짐승'이라고 맹비난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이란은 짐승 같은 아사드를 지지한 책임이 있다"며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겨냥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이란은 불과 일주일 전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인 터키에 모여 내전 이후 시리아의 미래를 논의했다.

푸틴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앙카라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만나 시리아의 전후 복구에 대한 협력과 지원 등을 약속했다. 시리아의 '영토 보존'을 보호한다는 다짐도 했다.



러시아, 이란, 터키는 모두 시리아에서 군사작전을 펴고 있는 국가다. 러시아와 이란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 터키는 이슬람국가(IS) 격퇴에 합류한다는 명분으로 참여했다가 지금은 미국 주도 국제동맹군을 지원한 쿠르드민병대를 공격하고 있다.

이 회담은 시리아에서 군사작전을 펼친 또 다른 국가 미국이 없는 가운데 시리아의 미래가 논의된 자리였다.

시카고 트리뷴은 이들 세 국가와 미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속에서 최근 몇 개월 새 두 번째로 이뤄진 러시아·이란·터키 3국 회동은 시리아에서 미국의 힘이 시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반면 시리아 미래에 관한 트럼프 미 행정부의 태도는 모호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시리아에서 나올 것이다. 곧 한다. 이제 다른 사람들이 처리하도록 하자"며 돌연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카드를 꺼냈다.

추후 백악관은 "미국과 우리 동맹들은 아직 뿌리 뽑지 못한 소규모 이슬람국가(IS)를 제거하기로 다짐했다"며 철군이 곧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차단하려 애썼으나, 미군 철수설이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철군' 발언을 꺼내기 전까지 유지돼온 미국의 공식 입장은 "시리아의 미래에 아사드는 없다"는 것이었다.

물러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시리아특사를 만난 뒤 "미국은 시리아 정부에서 아사드 역할이 전혀 없는 쪼개지지 않고 통합된 시리아를 원한다"며 '아사드 배제'를 확인했다.

틸러슨 전 장관은 "이것이 우리의 견해이고 아사드 정권과 아사드 일가를 위한 미래는 없다는 점을 수차례 말해왔다. 아사드 일가의 통치는 끝나가고 있다. 유일한 이슈는 그것을 어떻게 가져오느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출범 당시 시리아에서 내전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킬 유일한 수단으로서 평화협상을 통한 해법을 지지하면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절차가 시작되기 이전에 아사드가 떠나는 것이 전제조건은 아니다"는 입장을 취했다. 평화협상 진전과 타결을 위해 합의된 평화체제로 본격 접어들기 전까지는 권력에 있는 아사드를 인정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물러나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공습에 힘입어 탈환 지역을 점차 확대하면서 '승리' 선언에 점점 다가간 아사드가 궁지에 몰린 반군 세력들과 타협을 뜻하는 평화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없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다니엘 드페트리스는 자국민을 상대로 전쟁범죄와 인도주의적 범죄를 자행한 만큼 미국이 아사드와 다시 협력할 수 있겠느냐고 자문한 뒤 다행히 시리아의 정치가 미국 국가안보의 핵심에 있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공화, 민주 양당에 공감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사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외국 군대에 의존해야만 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사드 정권이 무시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중동 내 미국의 운신 자유를 심각하게 해치지 않는 존재라며 아사드가 대통령궁에 있든 없든 미국의 중동정책은 계속 굴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서방이 시리아 재건에 참여하지 않으면 약 2천억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는 시리아 재건에 대한 책임의 굴레는 푸틴에게 씌워질 것이라고 봤다.

시리아의 혼란은 러시아에 맡기고 미국의 이익들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는 시리아에 기반을 둔 테러 집단들을 목표로 삼는 정도의 융통성을 보유하는 것이 트럼프 정부의 최선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아사드의 미래는 푸틴의 손에 달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서방 외교관은 로이터에 "러시아와 이란에 대안이 없는 한 아사드가 머물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사드가 물러나는 날짜는 다른 누구보다 러시아에 달렸다. 러시아가 보기에 더 나은 다른 누군가를 찾게 된다면 아사드가 떠날 수 있다"고 했다.

ju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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