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북 낸 '인쇄장인' "감동 주는 인쇄 꿈꾸며 15년 버텨"

입력 2018-04-08 06:00
갤러리북 낸 '인쇄장인' "감동 주는 인쇄 꿈꾸며 15년 버텨"

유화 유화컴퍼니 대표, 원작 느낌 최대한 살린 화집 시리즈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굳이 가지 않아도 화집과 휴대전화, 컴퓨터 등으로 명화를 언제 어디서든 감상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이 다 같지는 않다. 전시장에서 원작의 아우라를 경험하고 나면, 지금까지 본 흐릿한 그림들에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유화 유화컴퍼니 대표가 지난 4일 원작에 가까운 그림들을 담은 화집 시리즈 '갤러리북'을 출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첫 책에는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23점 이미지와 저술가 김영숙 씨가 쓴 고흐 이야기가 담겼다.

유 대표는 오래전 반 고흐 전시회를 다녀왔다가 충격을 받았다. "교과서, 도록, 시중의 책에서 보던 그림들과 전시회에서 본 실제 그림은 완전히 달랐어요. 이제껏 보던 그림들에 느낀 실망감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유 대표는 문화·예술계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쇄 '장인'이다. 자신만의 인쇄소는 아직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완벽한 인쇄물을 내어놓으려는 집념으로 고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유화컴퍼니에 의뢰해 성남훈 사진집 '연화지정'(蓮花之井)을 출간한 박미경 류가헌 관장은 유 대표를 두고 "최근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감동한 분"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감동을 주는 인쇄를 하고 싶었고 그것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만 했다"라면서 "15년을 버틴 이유는 그것 하나밖에 없다"고 밝혔다.

"책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면서 인쇄에 몸담게 됐는데 매번 듣는 이야기가 '이 이상은 안 돼'라는 말이었어요. 저는 그림을 이 정도의 색깔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모든 업계에서 다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유 대표는 찍고 또 찍어내기를 반복하면서 관련 데이터를 쌓았다. 일감이 많지 않을 때는 다양한 잡무를 하면서라도 돈을 모아 실험에 매달리기도 했다. 일반 잉크로 표현하기 어려운 원작의 색감과 직접 그린 듯한 디테일을 재현하기 위해 종이, 잉크, 망점, 분판 등 전반에 걸쳐 기존과 다른 복제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틈나는 대로 외국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아가 원화들을 꼼꼼히 관찰하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명화의 붓터치와 물감의 번짐까지 보이는 갤러리북은 그 덕분에 탄생했다. "포트폴리오를 갖고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을 찾아갔는데, 담당자가 '이런 퀄리티의 책은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유 대표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복제된 작품이 원화와 가까울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갤러리북 1권 빈센트 반 고흐 편(102쪽) 가격은 2만8천 원이다. 장당 만 원이 훌쩍 넘는 아트포스터 품질과 비교하면 갤러리북의 '가성비'는 더 뛰어나다. 이미지 한 장씩 깨끗하게 뜯어서 액자에 걸거나 벽에 붙일 수도 있다. 딸 하나를 둔 그는 해외 미술관을 쉽게 찾아갈 수 없고 어쩌다 국내 전시를 통해 명화를 스치듯 감상하는 것이 전부인 아이들을 위해 최대한 가격을 낮추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클로드 모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구스타프 클림트 등의 명작을 계속 갤러리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좋은 인쇄란 무엇이냐는 마지막 물음에 아래와 같이 답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책을 만들었을 때 처음에는 다들 '굳이 그렇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그 정성을 알아보더라고요. 앞으로 많은 책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수는 적더라도, 한 권 한 권 최선을 다해 좋은 책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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