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현대차그룹 '엘리엇 요구' 기업가치상승 계기로 삼아야

입력 2018-04-04 14:41
[연합시론] 현대차그룹 '엘리엇 요구' 기업가치상승 계기로 삼아야

(서울=연합뉴스)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1조 원 규모의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지분을 무기로 지배구조 개선 추가조치와 이익 주주환원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엘리엇 계열 투자자문사 엘리엇 어드바이저스 홍콩은 4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엘리엇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 보통주를 미화 10억 달러(1조500억 원)어치 보유하고 있다"면서 "현대차그룹의 주요 주주로 현대차그룹이 지속 가능한 기업구조를 향해 첫발을 뗀 점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그룹 내 모든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는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한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엘리엇은 "출자구조 개편안은 고무적이나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를 위한 추가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영진이 그룹 계열사 기업 경영구조 개선과 자본관리 최적화, 주주환원 달성 방안 등 세부적인 로드맵을 공유하길 요청한다"고 부연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2015년 삼성물산의 제일모직 흡수합병에 반대했던 헤지펀드다.

행동주의 펀드는 특정 기업 주식을 사들여 일정 의결권을 확보한 뒤 그 기업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며 주로 단기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끌어올리도록 요구하기도 하고, 배당을 더 하라고 압박하기도 하며 때로는 지배구조 개선, 자산매각, 자기편 이사 선임 등도 추구한다. 단기적으로는 기업가치와 주가 상승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단기 주주 이익 확대에 치우쳐 장기적으로는 기업가치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주가 상승에 유리한 이익률 높이기에 몰두하다가 장기적 기업가치 상승에 필요한 핵심자산 매각, 연구개발(R&D) 축소의 부작용이 빚어질 수 있어서다. 로이터 통신의 분석처럼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판매부진을 겪고 있는 현대차엔 이번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요구로 커다란 부담이 생긴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28일 부품 계열사 현대모비스를 최상위 지배회사로 만들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했다. 현대모비스의 사업분할과 현대글로비스와의 부분 통합을 통해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단순한 구조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개편이 완료되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대주주인 정몽구 회장 부자(父子)→현대모비스→현대차 등 각 계열사'로 단순화된다. 정 회장 부자가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의 일부를 팔아 1조 원가량의 세금을 내고 나머지를 순환출자 해소에 쓴다는 것이다. 이 지배구조 개선안은 현대차그룹에 순환출자를 해소하라고 압박해온 공정거래위원회조차 '긍정적으로 본다'는 공식 입장을 낼 만큼 일반의 예상을 깬 '정공법'으로 평가를 받았다.

엘리엇의 발표는 현대차그룹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로 들린다. 지금은 구체적으로 얘기하기 어렵지만 할 말이 있을 때 '다시 공개하겠다'는 뉴욕 현지 엘리엇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추가 요구도 있을 것 같다. 현대차그룹은 엘리엇의 요구 내용이 보도된 후 "기업가치와 투자자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국내외 주주들과 충실히 소통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의 투자액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3사 시가총액의 1.4% 정도다. 350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보유한 엘리엇이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설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지분으로는 현대차그룹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소송까지 걸었던 전력도 있는 만큼 엘리엇의 움직임을 꼼꼼히 살피고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지배구조 추가 개선이나 이익 주주환원 요구를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영국계 사모펀드 소버린은 2003년 3월 SK 주식 15% 가까이 사들인 뒤 최태원 회장과 경영권 분쟁까지 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는 SK 주가도 오르고 지배구조도 개선되는 효과를 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주요 주주' 엘리엇의 요구를 주주소통 강화와 투명경영을 통한 기업가치 상승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