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무슬림 징벌의 날' 혐오범죄 없이 넘겼다

입력 2018-04-04 11:17
영국 '무슬림 징벌의 날' 혐오범죄 없이 넘겼다

욕설·폭행·도륙·방화 부추긴 선동편지 파동

하루내내 무슬림 분노·불안 속에 '연대의 목소리'도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영국을 불안에 떨도록 한 '무슬림 징벌의 날'(Punish a Muslim day)이 혐오범죄 없이 지나갔다.

영국 이브닝스탠더드에 따르면 런던 경찰은 "증오범죄가 발생했다는 신뢰성 있는 정보가 한 건도 입수되지 않았다"고 3일(현지시간) 오후 밝혔다.

지난달 영국에서는 4월 3일을 '무슬림 징벌의 날'로 선포한다는 서한이 가정, 하원의원, 기업체 등에 전달됐다.

이슬람 신도를 겨냥해 말로 괴롭히면 10점, 히잡을 벗기면 25점, 산성 물질을 투척하면 50점, 총이나 칼, 차량으로 학살하면 500점, 모스크를 폭파하거나 불사르면 1천점.

흉포한 정도에 따른 포상체계까지 제시하며 증오, 폭력을 선동한 까닭에 그렇지 않아도 무슬림 반감 확산을 우려하던 영국 전역이 경악했다.

영국에서는 극우세력이 탈퇴파로 영향력을 행사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이후 외국인 혐오 정서가 몰라보게 커졌다.

무슬림 공동체는 자신들을 향한 반감과 증오범죄의 급증에 불안을 느끼던 차에 기괴한 편지의 등장으로 발칵 뒤집혔다.

영국 내 무슬림들은 '징벌의 날'이 다가오자 소셜미디어에 불안을 잔뜩 담은 의견을 쏟아냈다.

무슬림끼리 서로 지켜야 한다는 각오, 이상한 편지 때문에 일상이 변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는 용단이 교차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무슬림은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공공의료원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루 휴가를 냈다"며 "어머니가 출근하지 않으면 환자들이 밥을 못 먹는다"고 말했다.

로와이다 압델라지즈는 자기 트위터에 "특히 히잡을 쓴 여성들이 밖에 안 나가겠다고 하는 문자 메시지, 소셜미디어를 많이 봤다"며 "각자 편한 대로 하는 게 옳지만 나는 정상적 하루를 보낼 터이니 해볼 테면 해보라"고 썼다.

일부에서는 영국 정부가 이날 무슬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WP에 따르면 우려와 분노 뒤에는 무슬림과의 연대를 촉구하는 풍경도 목격됐다.

소셜미디어에는 '무슬림 사랑의 날', '무슬림을 지키는 날'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게시됐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공포를 느끼는 이들에게 교통 수단을 제공하겠다는 게시물도 있었다.

"내일 대중교통 이용하지 않고 샐퍼드/트래퍼드에서 볼턴/버리까지 차 얻어타실 분 계시면 연락주세요. 집에서 나오는 걸 두려워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요. #무슬림 징벌의 날."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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