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사상의 핵심가치는 무엇인가…'보수의 정신' 번역출간

입력 2018-04-04 09:09
수정 2018-04-04 10:39
보수주의 사상의 핵심가치는 무엇인가…'보수의 정신' 번역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20세기 미국 보수주의에 큰 영향을 끼친 책 '보수의 정신'이 번역 출간됐다.

정치이론가이자 사회비평가였던 러셀 커크(1918∼1994)가 쓴 '보수의 정신'은 1950년대 초반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이념이었던 당시 미국에서 보수주의 사상의 계보를 정리해 2차 대전 이후 보수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친 책으로 평가된다.

커크는 특히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1729∼1797)를 '가장 위대한 보수주의 사상가'로 평가하며 그의 사상에 주목한다. 커크는 1790년 버크가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을 출간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의식적인 보수주의가 모습을 드러냈고 평가한다.

책은 이후 존 애덤스, 알렉산더 해밀턴, 존 칼훈, 벤저민 디즈레일리, 아서 밸푸어,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월터 스콧, 알렉시스 드 토크빌, 너새니얼 호손, 조지 기싱, 로버트 프로스트, T.S. 엘리엇까지 영국과 미국의 정치·종교·철학·문학에 나타난 보수주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한다.

보수주의를 몇 마디의 문장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보수주의 사상의 여섯 가지 핵심 기둥을 제시한다.

첫째, 초월적 질서 또는 자연법 체계가 사회와 인간의 양심을 지배한다는 믿음이다. 불변하는 도덕적 질서가 있다는 신념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강한 의식으로, 정의와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개인적 확신으로 인간이 지배되는 사회는 어떤 정치적 기제를 채택한다 해도 매우 훌륭한 사회라고 말한다.

둘째, 획일성과 평등주의를 배격하고 다양성과 인간 존재의 신비로움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다. 보수주의에서는 건강한 다양성을 보존하려면 질서와 계급, 물질적 조건의 차이, 다양한 종류의 불평등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셋째, 문명화된 사회는 '계급 없는 사회'가 아니라 질서와 위계가 필요하다.

넷째, 자유와 재산권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위대한 문명은 사유재산권을 토대로 수립된다. 사유재산제도, 사적소유권은 인류에게 책임감을 가르치고, 성실해야 한다는 동기를 제공하며 생각할 여가와 행동할 자유를 제공해준 강력한 도구다. 대신 재산보유자에게는 의무가 따르며 보유자는 도덕적·법적 의무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또 경제적 평준화는 경제적 진보가 아니라는 견해를 유지한다.

다섯째, 추상적 설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려는 '궤변론자'를 믿지 않고 법률과 규범을 믿는다. 보수주의자는 현대인이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이며 그들의 조상보다 멀리 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앞서 살았던 인물들의 위대한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서는 전례, 격언, 심지어 선입견을 따르는 편이 현명하다.

여섯째, 변화가 유익한 개혁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한다. 갑작스럽고 맹렬한 개혁은 느닷없이 깊이 째는 수술만큼이나 위험하며 신중한 변화야말로 사회를 보존하는 수단이다.

"어느 사회나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개선하려는 추진력과 보존하려는 추진력이 모두 필요하다. 시대의 환경에 따라 우리는 진보 쪽에 힘을 보탤지 아니면 계속성에 무게를 두어야 할지를 결정한다. 현대 사회는 눈이 핑핑 도는 속도로 변화한다. 그에 따른 도덕적 질서와 시민적 질서의 해체를 막는데 지금의 보수적 추진력은 충분할까. 그 사실 여부는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이 얼마나 그들의 유산을 잘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1986년 일곱번째 개정판 저자 서문 중)

책은 언론사 기자 출신인 이재학씨가 번역했다. 번역자는 이 책이 아시아에서 한 번도 완역되지 않았으며 일본에서도 최근에야 번역에 들어갔다고 소개했다. 지식노마드 펴냄. 856쪽. 3만6천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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