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를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신간 '바나나제국의 몰락'

입력 2018-04-03 11:34
수정 2018-04-03 15:18
바나나를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신간 '바나나제국의 몰락'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950년대 사람들이 먹던 바나나는 지금 먹는 바나나와는 맛이 다르다. 1950년에는 대부분의 바나나가 중앙아메리카에서 생산돼 수출됐다. 거대 농업기업은 그로 미셸(Gros Michel)이라는 단일 품종의 바나나를 재배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 전역, 나아가 전 세계의 바나나가 유전적으로 단일한 품종이 됐다. 단일 품종의 재배는 경제적 관점에서는 유리하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문제가 된다. 어느 한 종류의 병원균만으로도 전체 농장에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1960년대 바나나덩굴쪼김병균이란 이름의 파나마병이 발병하면서 바나나 농장은 황폐해졌다. 결국, 그로 미셸 종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거대 농업기업들은 다시 캐번디시라는 품종을 개발했다. 냄새가 이상하고 당도도 낮았지만 파나마병 병원체에 저항력이 있는 품종이었다. 다시 모두가 캐번디시 종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195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 접한 바나나는 거의 캐번디시 종이다.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파나마병을 일으킨 바나나덩굴쪼김병균이 새로운 계통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 계통은 이미 아시아에서 동아프리카로 퍼졌고 중앙아메리카에도 전파될 것으로 보인다. 캐번디시 품종을 대체할 또 다른 품종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아예 바나나라는 이름이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롭 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응용생태학과 교수가 쓴 '바나나 제국의 몰락'(반니 펴냄)은 이처럼 생물다양성이 사라지며 발생하는 일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위험에 처한 것은 바나나뿐이 아니다. 농업이 세계화하면서 식물 다양성은 감소했고 어느 지역이나 똑같은 작물을 재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명명되고 연구된 현생 식물은 30만종이지만 사람들이 섭취하는 열량의 80%가 그중 12종에서 나온다. 콩고분지에서는 열량의 80% 이상을 오로지 카사바 한 종에만 의지한다.

단일 품종에 지나치게 의존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아일랜드의 대기근이다. 1845년 아일랜드에서는 감자역병이 발생했다. 럼퍼감자라는 종에 의존했던 아일랜드는 감자역병으로 대기근이 발생하며 1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생물 다양성이다. 과거에는 한 지역에서 작물이 재배되다 병충해가 발생하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 재배하는 식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병충해가 작물의 이동 속도를 따라잡고 있다. 병충해에 일단 따라잡히면 작물을 구할 방법은 극소수다. 게다가 아직도 인류가 모르는 병균이 너무 많다. 아직 인류는 감자역병도 극복하지 못했다.

책은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과학자들을 조명한다. 러시아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는 작물의 육종과 종자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수집한 최초의 인물이다. 바빌로프의 연구진은 1935년 17만종이 넘는 작물 품종을 수집해 보관했고 2차대전 때도 목숨을 바치며 작물 씨앗을 지켜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군도 스피츠베르겐섬에 있는 종자은행인 '스발바르 국제종자 저장고'는 원자폭탄이 떨어져도 살아남도록 설계됐다. '운명의 날 저장고'로도 불리는 이 종자은행은 툰드라 영구 동토대가 냉장고 역할을 하면서 전기가 없어도 종자들을 보관할 수 있다. 2008년 2월에 완공된 종자은행에는 2015년 5월 현재 86만4천품종의 종자가 보관돼 있다. 이 종자은행의 설립 뒤에는 미국의 농업전문가 케리 파울러가 있었다.

일상생활에서도 생물다양성 보존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식량을 덜 낭비하고 고기 소비를 줄이고 버리는 음식을 줄이는 것도 미약하지만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디서 살든, 무엇을 먹든 여러분은 자신이 섭취하는 것을 통해 나머지 생명과 연결돼 있다. 여러분의 한 입은 야생의 자연을 위협하지만 그와 동시에 야생의 자연에 의존한다." 노승영 옮김. 400쪽. 1만8천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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