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외형보다 내실' 석유사에 꽂힌 월가
코노코필립스 '외로운 변신'…투자자들 안정적 수익에 주목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작은 것이 아름답다."
글로벌 석유업계에서 외형 확대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움직임이 엿보이고 있으며 이를 지향하는 기업들이 투자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2일 보도했다.
지난 1년간 미국의 대형 석유회사 가운데 가장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인 회사는 막대한 투자를 통해 야심적인 유전 탐사를 추진하는 엑손 모빌이나 셰브런이 아니었다.
정반대로 성장보다는 규모를 줄이고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확대를 지속하고 있던 코노코필립스가 바로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은 기업이었다.
이 회사 주가는 29%나 상승해 경쟁사의 주가는 물론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를 크게 앞섰다. 같은 기간에 엑손 모빌의 주가는 9% 하락한 상태다.
코노코필립스의 높은 주가 상승률은 투자자들이 이제 메이저 석유회사들에서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유가가 상승하면 막대한 투자수익이 기대될 수 있는 엑손 모빌이나 셰브런의 주식을 사들이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산유량 확대가 유가 상승을 계속 위협함에 따라 투자자들은 석유회사들의 성장에 훨씬 회의적인 입장이다. 안정적인 수익을 찾는 보수적 투자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유틸리티 업체의 주식이 선호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캠비어 인베스트터스의 팀 버러넥 매니저는 지난 10년간 셰일 혁명 덕분에 석유업계는 다수의 성장주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고 말하고 "지금 주주들은 그저 투자수익을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때 세계적인 석유회사의 반열에 들어가 있던 코노코필립스는 2012년부터 변신을 시작했다. 정유사업을 분리하는가 하면 심해 유전 탐사 사업을 정리했고 보유 현금을 재투자하기보다는 주주들에 환원하는 쪽을 선택했다.
당시 이런 움직임에 동조했던 석유회사들은 거의 없었다. 코노코필립스의 라이언 랜스 최고경영자(CEO)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주 외로운 위치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코노코필립스가 방향을 튼 것은 미국의 산유량 확대가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를 열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미국의 산유량은 최근 하루 1천만 배럴을 넘어서면서 1970년대의 전고점을 깼다.
랜스 CEO는 "꼭지에서 꼭지로, 바닥에서 바닥으로 가는 사이클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밝히면서 자사는 생산량을 꾸준히 유지하고 배당과 투자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생산가를 맞추는데 주력했다고 소개했다.
코노코필립스의 지속 가능한 생산가는 현재 배럴당 40달러다. 이는 미국산 원유의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선을 넘는다면 적지 않은 이익금이 주주들에게 돌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경쟁사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늘리기는 했지만 지속 가능한 생산가를 낮추는데 노력하지는 않고 있었다. 오히려 신규 투자 및 주주배당을 위해 자산을 매각하는 기업들이 많았다.
일례로 석유회사 헤스는 지난해 3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매각했고 최근에는 행동주의 투자자들과의 표 대결을 피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 규모를 10억 달러 가량 늘렸다.
이 회사의 올해 예상 이익은 16억 달러로, 예정된 투자액 21억 달러를 밑돈다. 10억 달러의 자사주를 매입하게 되면 15억 달러의 현금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엑손 모빌과 셰브런은 코노코필립스보다 외형도 크고 순익도 훨씬 많다. 게다가 유가가 급락했던 2014년 이후에도 주주 배당을 결코 축소한 적이 없다.
두 회사는 오랫동안 수십억 달러 상당의 자사주 매입을 지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셰브런은 2015년 자사주 매입을 중단해야 했고 엑손 모빌의 자사주 매입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물론 코노코필립스의 변신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이 회사는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떨어졌던 2016년초 자사주 매입을 3분의 2 가량 축소했다.
코노코필립스는 유가가 상승하면 이익을 주주들에게 환원하겠지만 유가가 지속 가능한 생산가를 밑돌면 자산을 매각하고 주주배당을 줄이거나 부채를 늘릴 수 있다는 신축적인 입장이다.
유가는 지난 6개월 동안 26% 가량 상승했지만 과거처럼 주가에 보탬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일부 투자자들이 유가 랠리를 그리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에버코어 ISI의 더그 테리슨 애널리스트는 이런 여건이라면 투자자들이 내실을 기하는 코노코필립스 같은 업체를 선호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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