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 역사 잊지 말아야" 덴마크에 첫 흑인여성 동상

입력 2018-04-02 16:26
"식민지배 역사 잊지 말아야" 덴마크에 첫 흑인여성 동상

덴마크 식민지배에 맞서 봉기 주도한 카리브해 여성이 주인공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동상이라면 백인 남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덴마크에서 사상 최초로 흑인 여성을 기리는 동상이 설치됐다.

수백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식민지배 시절, 카리브해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당시 식민지배에 강력히 저항한 여성이 동상의 주인공이어서 더욱 화제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는 지난달 31일 덴마크의 식민지배에 대항, 봉기를 이끈 한 여성 흑인 지도자의 동상이 들어섰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언론들이 1일 보도했다.

"나는 메리 여왕"이라는 이름의 이 동상은 한 흑인 여성이 왼손에는 저항의 상징인 횃불을, 다른 쪽에는 사탕수수를 자르는 데 쓰이는 도구를 움켜쥐고 맨발로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동상의 주인공은 소위 '반란군 여왕'(Rebel Queen)으로 알려진 메리 토마스.

메리는 다른 2명의 여성 지도자와 함께 1878년 '파이어번'(Fireburn)으로 알려진 봉기를 일으켰다. 이는 덴마크의 식민지 역사에서 최대 노동 봉기로 평가받고 있다.

이때의 봉기로 카리브해 세인트 크로이(St. Croix)섬의 50개 농장과 한 마을 대부분이 불탔다.

메리는 이 일로 대서양을 거쳐 코펜하겐의 여자 교도소로 이송됐으며, 덴마크의 식민지배에 저항한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이 됐다.

동상이 선 곳은 옛 카리브해산 설탕과 럼주(酒) 창고 앞으로, 메리가 갇혔던 곳으로부터는 약 1마일(1.6㎞) 떨어졌다.

덴마크 작가 자네트 일러스와 공동으로 기념물 제작을 한 미국령 버진제도의 조각가 라 본 벨은 "이 프로젝트는 덴마크의 (부모세대에서 자식세대로 이어지는) 집단적 기억에 도전해 그것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리브해 국가들에 끼친 덴마크의 식민역사와 함께 그것에 저항해 싸운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두 작가는 스스로 자금을 모아 공공장소에 동상을 세우는 일을 해냈다.

덴마크는 1917년 3월 3일 세인트 크로이와 세인트 존, 세인트 토마스 등 카리브해의 3개 섬을 미국에 2천500만 달러에 매각했으며, 이번 공개는 이 섬들의 매각 100주년 기념사업 마지막에 이뤄졌다.

덴마크 국립아트갤러리의 연구 큐레이터인 헨릭 홈은 "덴마크에 이런 조각품은 전혀 없었다"며 "덴마크에는 이제 과거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조각품이 들어섰고, 이는 또한 미래를 위한 작품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

역사가들은 덴마크 국가 차원에서는 그동안 수천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카리브해 식민지의 농장으로 강제로 끌고 간 일에 사실상 눈감아왔다고 말하고 있다.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교의 이엘스 브림네스 교수는 "이는 식민국가인 덴마크가 '우리는 다른 식민국가들처럼 나쁘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며 "하지만 우리는 다른 나라들처럼 나빴으며, 나는 덴마크 식민주의가 특별히 인도적이었다는 것을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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