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 김욱동 "'채식주의자' 오역 많은 부적절한 번역"
미국 국제 학술지 '번역 리뷰'에 논문 발표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영문학자이자 번역가로 이름 높은 김욱동(70) 서강대 명예교수·울산과학기술원(UNIST) 초빙교수가 소설 '채식주의자' 영문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채식주의자' 작가 한강과 영국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는 이 작품으로 2016년 영국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공동 수상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최근 미국 텍사스대학 번역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저명한 학술지 '번역 리뷰(Translation Review)' 100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스미스의 번역이 오역과 졸역이 많은 부적절한 번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스미스는 한국어의 기본 어휘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기본적인 어휘인 '팔'과 '다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arms'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feet'로 번역하고, 'feet'로 번역해야 할 것을 'arms'로 번역했다"고 지적했다.
또 '고가도로'의 고가(高架)를 높은 가격이란 뜻의 고가(高價)로 오해해 'expensive'로 번역하고, 아파트의 '앞 동(棟)'을 동쪽을 뜻하는 'out east'로 번역하는 등 동음이의어를 잘못 번역한 사례들을 열거했다.
아울러 주어를 착각해 번역한 문장들과 한국어나 한국문화 고유의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한정식'을 'Korean-Chinese restaurant'로 번역한 사례, 한국의 친족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처형(妻兄)'과 '처남(妻男)'을 혼동해 잘못 번역한 사례 등을 지적했다.
한국의 구어나 속어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 "아르바이트하는 애가 또 펑크를 냈어요"란 문장을 번역하면서 약속을 어겨 오지 않았다는 뜻인 "펑크를 냈어요"를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는 뜻으로, '아르바이트하는 애'를 '베이비시터'로 혼동해 "The babysitter's car got a flat tire"로 번역한 문장도 심각한 오역 사례로 꼽았다.
김 교수는 "스미스는 그동안 인터뷰나 강연을 통해 여러 번 자신의 번역이 '창조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자구에 얽혀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번역에서 말하는 '창조성'이란 원문에 충실한 뒤 목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할 때 달성할 수 있다. 즉 원저자가 암시적으로 표현할 것을 목표 독자의 이해를 위해 좀더 명시적으로 옮기는 것이 창조적 번역이다. 번역의 창조성은 오역이나 졸역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면죄부가 결코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필자는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데 추호의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다만 맨부커상이 창작과 번역 두 분야에 수여하는 상이기 때문에 번역을 문제 삼은 것일 뿐이다. 이 점에서는 오해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채식주의자' 영문 번역에 관한 논란은 맨부커 수상 이후 국내에서 문학평론가, 학자들이 오역을 지적하는 글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계속 이어져왔다. 그러다 지난 1월 말 원작자인 한강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스미스가 오역 실수를 60여 개 수정 목록으로 정리해 해외 출판사들에 전달한 사실을 전하며 이런 실수가 작품을 전달하는 데 결정적 장애물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1일 연합뉴스에 "'채식주의자'는 번역 오류가 너무 많아 60여 개를 수정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 개정하는 식으론 어림없고 완전히 새로 번역해야 한다. 스미스의 영어 문체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원작과 이렇게 멀어져서는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에서 상을 받은 직후 영어판을 읽어봤더니 번역이 엉망이어서 곧바로 이 논문을 썼다. 이후 영국 학술지에 발표하려 했지만, 영국에서는 맨부커상 위원회나 출판사 입장에서 창피한 일이어서 그런지 실어주지 않더라. 그러다 이번에 미국 학술지에 처음으로 보내봤는데 좋은 논문이라며 단번에 실어줬다"고 논문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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