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크리스테바, 정말 공산정권의 스파이였나

입력 2018-03-31 05:22
석학 크리스테바, 정말 공산정권의 스파이였나

불가리아 측 추가 문건공개…"크리스테바, 1970년대 佛 문화계·좌파동향 보고"

1984년 보고서 "기강해이…바쁘다고 회의 잊어먹고 빠지기 일쑤" 질책성 평가도

크리스테바 "내가 그들 감시받았기에 문건에 등장한 것…전혀 사실 아냐"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문학이론가로 이름난 프랑스의 석학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정말 젊은 시절 불가리아 공산정권의 비밀요원으로 일했을까.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의 폭로에 대해 크리스테바는 "나를 흠집 내려는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테바로 특정된 불가리아의 첩보원이 냉전시대 프랑스에서 어떤 정보 보고를 올렸는지 등에 관한 보고서가 추가로 공개되면서 진실공방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佛 초현실주의 작가와 공산당 지도부 성향 등 보고…단순관찰 수준

30일(현지시간) 르몽드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는 이날 논란의 중심인 '사비나' 요원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의 보고서 160쪽 가량을 추가로 공개했다.

이 위원회는 냉전시대 불가리아 국가보위부(DS·Darjavna Sigournost) 제1부 소속 사비나 요원의 정체가 현 파리 7대(디드로대) 명예교수이자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철학과 페미니즘 문학이론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사상가 줄리아 크리스테바(76)라고 며칠 전 폭로한 바 있다.

이날 공개된 문건에 나온 사비나 요원의 행적은 1970년대 프랑스 좌파진영과 문화계에 대한 단순한 관찰 수준의 보고가 대부분이다.

해외정보를 주로 다루는 국가보위부 제1부 소속인 사비나 요원이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 계열의 문인 루이 아라공 등 프랑스 예술가들의 정치적 입장이나, 소련의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개입에 대한 프랑스 좌파진영의 반응을 챙겨 보고한 내용들이다.

1970년 2월 19일 사비나의 정보보고에 기초해 작성된 보고서에는 프랑스공산당(PCF)의 지도부였던 로랑 르루아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띈다. 르루아는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개입에 비판적이었지만, 당의 입장에 따라 자신의 공식 입장을 수정했다. 그러나 불가리아의 정보보고에는 그가 사석에서는 여전히 소련의 행동을 신랄하게 비난했다는 내용이 남아있다.

국가보위부 이반 보지코프 중위가 사비나에게 하달한 임무 중 하나는 '공산진영과 불가리아를 파괴하려는 프랑스의 이데올로기적 구심점'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보지코프는 사비나를 프랑스에서 포섭한 당사자로 지목됐다.

이 문건에는 불가리아 공산정부가 프랑스의 아랍 정책에도 촉각을 곤두세운 모습도 남아있다.

'리우보미르'라는 암호명의 요원은 사비나 요원이 보낸 정보를 다룬 보고서에서 "프랑스 선전기관들의 상당수가 강성 유대민족주의자(시오니스트) 손에 들어가 있어 프랑스의 친(親)이스라엘적 입장이 대세가 됐다"고 적시했다.

이번 문건에는 크리스테바의 암호명은 물론 그의 실명도 '줄리아 크리스테바, 1941년 슬리벤 태생'이라고 명시됐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1984년 11월 10일자 보고서에는 사비나 요원의 과거활동을 평가하며 기강이 해이하다고 질책하는 내용도 포함되 눈길을 끈다.

이 문건은 "1970년대 말 그녀는 해외의 우리 국민에 대한 정보와 급진적 아랍단체들과 마오이스트(마오쩌둥주의자) 그룹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올리는 정보들이 특별히 흥미롭지도 않고, 기강이 해이해졌다. 바쁘다면서 회의를 잊어먹고 빠지기 일쑤"라고 질타했다.

이 문건은 크리스테바가 마오이즘에 심취한 뒤 1973년부터 국가보위부로 단절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크리스테바 측 "전체주의 경찰기구 문서들로 내 저서와 업적 의심…분노"

이 같은 내용에 대해 크리스테바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냉전 시대 불가리아 국가보위부의 문건에 자신이 등장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이 그들의 감시 대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크리스테바의 주장이다.

그가 선임한 장마르크 페디다 변호사는 이날 르몽드에 "크리스테바는 어떤 종류의 기관에도 소속된 적이 없으며 어떤 내용의 정보 보고서도 쓰지 않았다"면서 "그는 진실성이 의심되는 서류들, 특히 전체주의 경찰기구가 작성한 문서들로 인해 자신의 저서와 업적이 의심받는 것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크리스테바는 앞서 전날에도 자신의 웹사이트에 "괴기스러운 날조이자 나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누군가가 나를 흠집 내려는 것"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불가리아 공산정권의 반체제운동가였던 코프린카 체르벤코바도 크리스테바를 옹호했다. 그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크리스테바가 했던 일상적인 인터뷰들이 첩보보고로 해석되고 있다. 공개된 문건들을 보면 그가 가족들을 공산정권의 박해로부터 지키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가 공개한 문건의 신빙성이 크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냉전 시대에 공산국가의 대학생이 서방 국가로 유학하는 것은 불가리아 정보기관의 승인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크리스테바가 1966년 프랑스의 국비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건너간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특히, 당시 동구권 정보기관들은 크리스테바처럼 본국에 가족을 남겨둔 경우 서방의 자유의 기운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고자 유학이나 외국 이주를 더욱 엄격하게 통제했었다.

따라서 학문적 열정으로 뭉친 크리스테바가 유학 승인을 조건으로 당국의 포섭에 넘어가 프랑스 예술·지성계의 동향을 관찰해 보고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크리스테바의 스파이 전력 의혹은 그가 최근 불가리아의 문예지 '문학저널'(Literaturen Vestnik)과 손잡고 일하려는 시점에 터져 나왔다.

이 잡지에 투고하면 기자 신분으로 분류되는데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의 규정상 1976년 이전 출생한 언론인들은 과거 공산정권의 비밀경찰에 협조한 적이 있는지 등을 검증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테바와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의 발표가 완전히 엇갈리고 있어 당분간 크리스테바의 스파이 전력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크리스테바는 자크 데리다, 자크 라캉, 롤랑 바르트 등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의 세계적인 철학자들과 동시대에 활동하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여성 철학자이자 페미니즘 문학이론가다.

1941년 불가리아 슬리벤에서 태어난 그는 소피아대에서 프랑스 철학을 공부한 뒤 도불, 문학·정신분석학·언어학·기호학 분야에서 업적을 쌓았다.

정신분석에 기반을 둔 접근법으로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여성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해 '사랑의 역사', '시적 언어의 혁명', '공포의 권력' 등 30권이 넘는 저서와 논문, 소설들을 펴냈으며 국내에도 저서 다수가 번역돼 나왔다.

프랑스 정부는 크리스테바의 학문적 업적을 인정해 2015년에는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했으며,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그를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100인에 꼽기도 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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