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 챔피언, 그린 재킷 1년 뒤엔 반납한다
여러 번 우승해도 그린 재킷은 한 벌 뿐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골프 명인 열전' 마스터스는 우승자는 시상식 때 녹색 양복 상의인 그린 재킷을 받아 입는다.
그린 재킷은 강렬한 상징이다. 마스터스 그린 재킷은 이 세상 어떤 골프 대회 우승 트로피보다 더 유명하다.
158년이나 된 디오픈이 우승자에 주는 클라레 저그는 몰라도 84년째인 마스터스의 그린 재킷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린 재킷은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이하 오거스타)의 회원이 입는 유니폼이다.
오거스타 회원은 저마다 클럽 하우스 개인 사물함에 그린 재킷을 걸어뒀다가 오거스타에 올 때마다 꺼내 입는다.
오거스타 회원이 그린 재킷을 유니폼 삼아 입기 시작한 것은 1937년부터다. 이미 마스터스가 4회째를 맞았을 때다.
영국 로열 리버풀 골프클럽이 공식 행사 때 회원 대표가 빨간색 재킷을 입는 전통을 본떴다는 게 유력하다. 오거스타의 설립자 보비 존스가 로열 리버풀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했다가 회원 대표가 빨간색 재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확인된 건 아니다.
대회 기간에 일반 관객이 궁금한 게 있을 때 물어볼 사람을 금세 찾을 수 있도록 회원에게 녹색 상의를 입힌 게 그린 재킷의 탄생 배경이라고 오거스타는 설명한다.
마스터스 우승자에게 그린 재킷을 준 것은 1949년부터다. 1949년 대회 우승자 샘 스니드(미국)에게 그린 재킷을 맞춰준 오거스타는 앞서 우승한 9명에게도 한꺼번에 그린 재킷을 선사했다.
스니드 이후 마스터스 우승자가 재킷을 걸칠 때 전년 우승자가 입혀주는 게 관행이 됐다.
그러나 1966년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다. 잭 니클라우스(미국)가 처음으로 2년 연속 우승했다. 그린 재킷을 입혀줄 작년 우승자가 없는 셈이 됐다. 결국, 니클라우스는혼자 그린 재킷을 입었다.
나중에 닉 팔도(잉글랜드)와 타이거 우즈(미국)가 2년 연속 우승했을 때는 오거스타 회장이 입혀줬다.
니클라우스는 마스터스에서 6번이나 우승했지만 그린 재킷은 한 벌 뿐이다. 한번 받으면 다시 우승해도 앞서 맞춘 걸 그대로 입혀준다. 4번 우승한 우즈나 3번 우승한 미컬슨 역시 그린 재킷은 한 벌밖에 없다.
시상식 때 입는 그린 재킷은 우승자와 체격이 비슷한 회원의 재킷이다. 일단 시상식 때 빌려 입고 나중에 치수를 재서 따로 만들어준다.
재킷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해밀턴 양복점에서 독점 제작한다. 1967년 이전에는 양복점이 자주 바뀌었다. 해밀턴 양복점에서 납품받지 않았던 적도 있다.
해밀턴 양복점은 오거스타에서 주문한 그린 재킷만 만든다. 같은 원단과 디자인으로 재킷을 만들어달라는 개인 주문은 받지 않는다.
양복점은 더러 바뀌었지만, 양모 원단은 줄곧 조지아주 더블린의 포츠먼 원단사에서 납품받는다.
단추는 매사추세츠주 워터베리, 가슴주머니에 패용하는 마스터스 로고 패치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만든다. 주인 이름은 안감에 붙은 라벨에 실로 새겨넣는다.
한 벌을 만드는데 한 달가량이 걸리는 그린 재킷 제조 원가는 약 250달러로 추정된다. 오거스타는 한 번도 납품 가격을 공개한 적이 없다.
뭐든지 신비주의와 폐쇄성으로 일관하는 오거스타는 그린 재킷도 엄격하게 통제한다.
그린 재킷은 오거스타 밖으로 반출이 금지된다. 클럽 하우스 개인 사물함에 보관하다 오거스타에 왔을 때만 입는다.
마스터스 우승자에게는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특혜를 준다. 하지만 1년 뒤에는 반납해야 한다.
예외없는 원칙이 없듯이 반납하지 않는 우승자가 있긴 하다.
1961년 우승자 게리 플레이어(남아공)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집으로 그린 재킷을 가져갔다가 이듬해 대회 때 깜빡 잊고 그냥 왔다가 오거스타 회장 클리퍼드 로버츠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린 재킷은 반드시 반납해야 한다"고 지청구를 계속하자 플레이어는 "필요하면 (남아공에) 와서 가져가시라"고 농담 삼아 대꾸했다. 로버츠는 껄껄 웃으면서 "그거 입고 밖에 나돌아다니지는 말라"며 더는 반납을 재촉하지 않았다.
로버츠의 당부에서 알 수 있듯 마스터스 챔피언이라도 아무 데나 그린 재킷을 입고 다니지는 않도록 주의를 시킨다. 점잖은 자리나 행사 때 입는 건 무방하다. 지난해 우승자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는 결혼식 피로연 때 그린 재킷을 입었다.
필 미컬슨(미국)은 그린 재킷을 입은 채 도넛 가게에 들렀다는 소문이 나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어떤 경매회사가 오거스타 그린 재킷을 경매에 내놓자 오거스타는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오거스타는 경매에 나온 그린 재킷은 가짜거나, 불법적인 경로로 취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경매 시장에서 팔린 그린 재킷은 15벌에 이른다.
2013년 경매에서 팔린 마스터스 초대 챔피언 호턴 스미스(미국)의 그린 재킷은 무려 68만2천229달러에 팔렸다. 골프 관련 기념품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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