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측근 왕치산·왕후닝 북중회담 배석…"北문제 직접 챙겨"

입력 2018-03-29 13:39
시진핑 측근 왕치산·왕후닝 북중회담 배석…"北문제 직접 챙겨"

김정일 방중땐 후진타오·원자바오 별도회담…김정은,시진핑과만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맞이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 주요 전략통들을 배석시킴으로써 자신이 직접 북한문제를 주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1인 체제' 구축에 이어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한 시 주석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 국빈만찬 등 행사에 주요 실력자를 참석시킴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며 대북 관계를 직접 관장하겠다는 뜻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당정의 대외관계 방향을 짜는 주요 인사들을 총출동시킴으로써 이번 회담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보여줬다. 정상회담의 형식과 규모 면에서도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각각 회담을 가졌던 것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시 주석과만 회담했다.

또 26일 회담에는 서열 5위의 왕후닝(王호<삼수변+扈>寧) 상무위원과 함께 양제츠(楊潔지<兼대신虎들어간簾>)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왕이(王毅) 외교부장, 딩쉐샹(丁薛祥) 중앙판공청 주임, 황쿤밍(黃坤明) 중앙선전부 부장, 쑹타오(宋濤) 대외연락부 부장 등 6명이 대거 배석했다.

무엇보다 최고지도부에 속한 정치국 상무위원이 일개 배석자로서 이 같은 외교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미 중국 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가 와해되고 시 주석과 나머지 상무위원들 사이에 상하 관계가 형성됐음을 은연중 보여준다.

스인훙(時殷弘) 중국 인민대 교수는 "김정은이 시 주석 이외에 다른 지도자와 별도 회담을 갖지 않은 것은 현재의 북중관계가 2011년 같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 후 주석 역시 집단지도체제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상황이 지금은 달라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회담에 이은 국빈만찬에는 이들 배석자와 함께 서열 2위의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사실상의 2인자로 불리는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을 포함해 정치국원급만 10명 가량 참석했다.

인민일보 해외판의 소셜미디어 계정인 협객도(俠客島)도 "김 위원장의 방중에 정치국 상무위원 3명과 왕치산 국가부주석, 정치국원 5명, 국무위원 1명이 배석할 정도로 환대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중에서도 왕후닝과 왕치산은 가장 주목되는 참석자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왕후닝은 중국 공산당의 이념·선전 담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북중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역대 지도자의 지도사상을 모두 정립한 중국 최고의 '브레인'으로 시 주석의 신임을 등에 업고 지난해 10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전격 발탁된 인물이다.

2015년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참석차 평양을 방문한 류윈산(劉雲山) 전 상무위원의 후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회담 배석은 류윈산의 후임자로서 자격보다는 중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가로서 의미가 두드러진다.

시 주석의 뜻을 받들어 그 사상을 정립하는 그에게는 미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북한 등 한반도와 관련한 미래 전략을 짜라는 지시가 내려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 주석의 최측근인 왕치산 국가부주석도 시 주석을 보조해 시진핑 2기의 대외관계를 조율, 총괄하는 인물로서 이번 회담에 배석했다. 실세 전략가로서 왕치산은 양제츠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으로 이어지는 당정 외교라인을 이끌고 시 주석의 외교를 지원하는 특별보좌관 격의 인물이다.



중국 차하얼(察哈爾)학회 덩위원(鄧聿文) 연구원도 왕치산의 참석에 주목하며 "의전적 역할에 머무는 국가부주석은 원래 이 같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비공식 방문 행사에 굳이 참석할 필요도 없었다"면서 "그의 참석은 대북관계를 중시한다는 중국의 뜻을 보여주며 왕치산이 앞으로 까다로운 외교문제를 전담하게 될 것임을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이번 북중 대화에 시 주석의 측근들이 대거 포진한 점도 시 주석 주도의 대북정책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왕치산, 왕후닝은 물론 딩쉐샹, 황쿤밍 등은 하나 같이 시진핑 충성파나 친위세력으로 분류된다.

앞서 북한을 방문했던 류윈산 전 상무위원 역시 장쩌민(江澤民) 계파로, 리위안차오(李源潮) 전 국가부주석은 후진타오 계열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장쩌민 계파가 장악했던 중국의 대북 라인이 대부분 교체됐다"며 "새롭게 지도부를 꾸린 시 주석이 북중관계를 복원시키며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와해된 대북 채널을 재구축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당 정치국원은 물론 중앙위원 신분도 아닌 왕치산의 참석은 북한과 관계를 일반적인 국가간 관계로 바꾸려는 중국의 의중도 함께 보여준다.

시 주석은 '혈맹'을 기반으로 당대당 교류를 통해 특수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로 자국의 대외전략과 이익에 부담을 주는 것에 경계감을 보이며 북한과 정상국가간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해왔다.

북중간 당대당 관계를 상징하며 중국의 대북관계 사령탑인 대외연락부의 쑹타오 부장의 참석 사실이 중국 관영매체의 회담 보도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은 점도 이런 중국의 의중을 보여준다.

반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쑹 부장이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 안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진을 게재했다. 쑹 부장은 지난해 11월 시 주석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했다가 김 위원장을 만나지조차 못한 채 돌아온 일이 있었다.

쑹 부장은 하지만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에 25일밤 단둥역 영접을 시작으로 송별까지 전 일정을 전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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