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가 날아다녀요"…산불 진화는 '도깨비불'과의 전쟁
바람 불면 확산 속도 26배 넘게 빨라 순식간에 옮겨붙어
산불 초속 11.7m 강풍 타고 3시간 만에 2㎞ 이상 번져
(고성=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현장 도착했을 때 눈도 못 뜰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불고 불씨는 이리저리 날아다니지…강풍이 밤새 지속했다면 정말 큰일 날뻔했습니다."
축구장 면적 56배에 달하는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고성 산불 진화에 나선 한 소방대원은 혀를 내둘렀다.
지난 28일 탑동리에서 시작된 불은 순간 풍속 초속 11.7m의 강풍을 타고 가진리, 공현진리 등 바닷가 방향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바람에 불똥이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飛火) 현상이었다.
비화는 산불 진화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산불은 단순히 능선을 따라 확산하지 않는다.
바람이 산불 확산 속도를 올리는 데다 마치 '도깨비불'처럼 수백m를 옮겨붙이는 탓에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어 화마(火魔)와의 싸움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다 껐다고 생각할 때 곳곳에 숨어있던 불씨가 강풍을 만나 재발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 빨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큰 불길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마와의 소규모 국지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이번 산불도 동해안에 내려진 강풍 주의보 속에 산불현장에는 순간 풍속이 초속 11.7m에 달하는 강풍이 불었다.
28일 오전 6시 19분께 산불이 최초 발생한 탑동리 산 16번지에서 2㎞가량 떨어진 가진리와 공현진리 등으로 번지기까지는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가진리 주민 김모(56)씨는 "대피방송 듣고 나와 보니 어느새 불이 집 앞까지 와있었다"며 "집에 불이 붙을까 호스로 물을 뿌리고 난리였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딸과 함께 대피한 이선자(72)씨도 "아침에 바닷일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을에 연기가 자욱해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며 "큰길 건넛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방과 산림 당국 등은 험한 산세에 강풍까지 불면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한 방울이라도 더 뿌리겠다는 각오로 인력과 장비 등 가용할 수 있는 진화 능력을 모두 쏟아부었으나 순식간에 번지는 산불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강풍으로 불이 번지는 상황에서 진화인력 투입은 인명피해로 이어질 위험부담도 컸다.
여기에 동해안 지역은 휘발성이 강해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단순림이 많다는 점도 피해를 키우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이번 산불이 발생한 지역도 소나무 등 침엽수 분포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현재 바람이 잦아들었으나 혹시 모를 재발화 가능성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밤사이 산불 지역에서는 두꺼운 낙엽층에 남은 불씨가 한때 되살아 연기가 피어오르는 불안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29일 "바람이 잦아들어 재발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며 "잔불정리와 뒷불감시를 철저히 해 더는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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