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정보유출 파문에 실리콘 밸리에 '역풍' 시작"

입력 2018-03-29 07:05
"페북 정보유출 파문에 실리콘 밸리에 '역풍' 시작"

'기술·혁신' 중시 '실리콘 밸리적' 사고에 호의적 이던 여론 역회전

정보이용 동의 대가 서비스 무료이용, 진짜 '동의'인지 의문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파문을 계기로 실리콘 밸리에 호의적이던 여론에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CNN, 블룸버그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의회가 부활절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다음달 둘째 주에 의회 청문회에 설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가 의회에서 증언하기는 처음이다.

미국 의회 청문회는 증인에 대한 날카로운 추궁으로 정평이 나있다. 독일 폴크스바겐(VW)의 배출가스 조작이 문제가 됐던 2015년에는 VW 미국 법인 대표가 청문회에 불려나가 "미국 국민을 속였다"는 혹독한 추궁을 당했다.

미국 의회 일각에서는 페이스북의 이번 개인정보 유출파문을 계기로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플랫폼 업체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의회가 이런 규제론을 제기한 배경에는 2016년 미국 대선 때 러시아에 의한 선거개입에 페이스북이 이용된데 대한 불신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했다. 의회는 작년 11월 러시아 스캔들 관련 공청회에 저커버그의 출석을 요청했으나 그는 출석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출피해를 입은 사람이 무려 5천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페이스북 측도 증언을 끝까지 거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 대한 실리콘 밸리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 15년 이상 활동한 경험이 있는 벤처 투자가는 "페이스북은 결백하다. 위법성이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팔로알토에 사는 젊은 엔지니어도 "유저들은 데이터가 페이스북 밖으로 나가는데 동의했다"고 지적,"플랫폼은 그런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런 의견은 '논리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기술개발 기업적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사용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대가로 무료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 "잘 만들어진 거래 관계"(투자자)에 사람을 끌어들이는게 플랫폼의 힘의 원천이자 타사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12년 선거 때 사용자들의 동의를 받은 후 페이스북의 데이터를 이용해 지지자들에게 투표를 호소, 재선에 성공했다. 지금도 다수의 의회 의원이 페이스북 계정을 지지자들과의 소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2011년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실리콘 밸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에 들러 사회를 맡은 저커버그 CEO와 함께 젊은 유권자들과 토론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백악관과 페이스북의 이런 밀월관계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하면서 끝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정보유츌 파문을 계기로 사용자들도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다시 말해 플랫폼 사업의 핵심부분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팔로알토에 거주하는 한 물리학자는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면서 "동의도 클릭 한번으로 해 버리게 돼 진짜 '동의'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물리학자는 페이스북에 노출하는 정보를 극력 억제하고 있다.

정계가 기존 실리콘 밸리적 발상을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게 됐다는 사실을 저커버그가 너무 안이하게 받아들였다는 의견도 있다. 33세인 저커버그의 언동이 "너무 순진하다"는 지적은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들에게서도 나오고 있다.

실리콘 밸리에 불기 시작한 역풍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방대한 양의 개인 정보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구글이나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들 기업 전반에 대한 규제여론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미국 의회는 구글 CEO의 증언을 요청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들 기업이 갖고 있는 높은 기술력과 혁신력은 미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기도 하다고 지적하고 미국 정치와 여론이 페이스북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저커버그가 의회 증언대에 서는 날은 미국 산업의 향방을 결정하는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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