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의 귀향… 윤이상 유해 통영에 비공개 안장됐다(종합)
딸 윤정 씨 "조용히 모시고 싶어 비공개 진행"…통영지역 일부서 찬반 논란
(통영=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독일에 묻혔던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유해가 고향인 통영국제음악당 인근 묘역에 비공개 안장됐다.
28일 통영국제음악당 등에 따르면 윤 선생 가족은 지난 20일 통영시추모공원 내 공설봉안당에 임시 보관된 유해를 음악당 인근에 미리 마련된 묘역에 안장했다.
이장식에는 딸 윤정 씨와 통영국제음악재단 관계자 등 4∼5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묘역은 98㎡ 규모로, 유해는 너럭바위 아래 자연장 형태로 안치됐다. 그 옆으로 1m 높이의 향나무와 해송이 심어졌다.
너럭바위에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사자성어를 새겼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을 가리킨다. 처한 곳이 더럽게 물들어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 마라는 의미가 담겼다.
사자성어 바로 아래에는 윤 선생의 한글·영문 이름과 생몰 연도가 적혀 있다.
오는 30일로 예정된 추모행사를 앞두고 사전에 유해를 안장한 것은 조용히 절차를 진행하고 싶다는 윤 선생 유족의 평소 뜻과 보수단체들의 반발 우려 때문이었다.
딸 윤정 씨는 "가족 및 가까운 지인들과 소박하고 조용히 이장하고 싶어 다른 곳에 따로 알리지 않았다"며 "이장과 관련해 도움을 받던 충남 수덕사 스님이 이장 날짜는 20일이 좋겠다고 해 그날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 유해 이장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단체 집회도 부담이었다"며 "날짜까지 잡아놓은 뒤 음악당 측에만 참석할 사람이 있는지 의향을 물어보고 이장 일정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유해 이장과 별개로 오는 30일 예정된 추모식은 계획대로 열린다.
이날 딸 윤정 씨와 아내 이수자 씨 등이 모두 참석해 2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윤 선생을 추모할 예정이다.
추모식과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일이 다가오면서 윤 선생 유해 이장을 둘러싼 찬반논란도 과열될 조짐을 보인다.
보수단체인 '박근혜 무죄 석방 천만인 서명운동 경남본부'는 지난달 말부터 통영시청 인근에서 유해 이장 반대 집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
반면 통영 음악단체인 '예술의 향기' 등 찬성 측은 통영 시내 곳곳에는 유해 이장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보수단체는 30일 추모식이 열리는 국제음악당 입구 쪽에서 유해 이장 반대집회를 열 계획이다.
시는 이날 행사 방해 등 혹시 모를 충돌을 우려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베를린을 근거지로 음악 활동을 한 윤 선생은 1967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과장된 동백림(東伯林·East Berlin)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다.
이후 국내에서는 이념성향과 친북 논란 등으로 제대로 음악성을 평가받지 못했지만, 해외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음악기법 및 사상을 융합시킨 세계적 현대 음악가', '유럽의 현존 5대 작곡가' 등으로 불렸다.
그는 1995년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타계해 가토우 공원묘지에 묻혔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통영시와 외교부 등의 노력으로 유해는 지난달 말 타계 23년 만에 고향인 경남 통영으로 돌아왔다.
최근 이장될 때까지 유해는 통영시추모공원 내 공설봉안당에 임시 보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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