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서 벚꽃놀이 즐긴다고? 일본서 '실내 행사'로 대체 확산

입력 2018-03-28 07:00
야외서 벚꽃놀이 즐긴다고? 일본서 '실내 행사'로 대체 확산

밤샘 자리 확보전 안해도 되고 꽃가루 알러지도 OK

사무실에 자리 깔고 맥주 마시며 벚꽃 동영상 즐기는 '실내 벚꽃놀이' 인기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인의 벚꽃사랑은 유별나다. 봄이면 공원을 비롯한 벚꽃 명소에는 어김없이 인파가 몰린다. 특히 회사 또는 부서단위의 단체 벚꽃놀이인 '하나미(花見)'행사는 낮익은 일본의 봄철 풍경의 하나다. 이런 일본의 연례 벚꽃놀이 행사에 변화가 일고 있다. 명소를 찾아가 현장에서 먹고 마시는 야외행사 대신 사무실에서 벚꽃 동영상을 보면서 즐기는 실내 벚꽃놀이가 기업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실내 벚꽃놀이는 '에어 하나미' 또는 '인도어 하나미'로 불린다.

시나가와(品川)구에 있는 요리 레시피 동영상 사이트 '쿠라실' 운영회사인 'dely'사는 회사 벚꽃놀이를 올해부터 '에어 하나미'로 바꿨다. 도쿄(東京) 지역의 벚꽃 만개를 며칠 앞둔 지난 20일 밤 이 회사 사무실에서 실내 벚꽃놀이 행사가 열렸다. 사무실 바닥에 야외 행사 때 쓰는 푸른 색 자리를 깔고 직원 20여명이 둘러 앉아 수제 요리와 맥주를 먹고 마시며 프로젝터로 벽에 비춰지는 벚꽃 동영상을 즐겼다.

이날 행사의 총무를 맡은 고바야시 나쓰미(27)는 "꽃가루 알러지가 있어 원래 야외 벚꽃놀이를 싫어했다"고 실내 행사로 치른 동기를 설명했다. 작년까지는 메구로(目黑)강변에서 벚꽃놀이를 했지만 "택시를 타고" 물건을 사러 뛰어 다녀야 하는 건 물론 장소를 차지하는 것도 여간 일이 아니었다. 사무실에서 하면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내 마실 수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된다. 참가자들도 "실제로 해보니 의외로 '벚꽃놀이 기분'이 난다"며 즐거워 했다.

반면 벚꽃 만개를 앞둔 23일 밤 10시 도쿄(東京)의 벚꽃 명소인 우에노(上野)공원. 예년 같으면 다음날 회사나 부서단위 단체 벚꽃놀이 장소를 확보하려는 사람들의 자리다툼이 한창일 시간이지만 분위기가 의외로 차분했다. 빗속에 우의차림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회사원 구제 가즈히코(46)씨는 "예년같으면 비가 와도 장소 쟁탈전이 치열했을텐데 이렇게 간단히 좋은 자리를 차지하니 오히려 이상하다"며 다소 맥빠진 표정이었다.

그는 "쇼와(昭和.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 연호) 시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밤을 새워 가며 자리싸움을 벌인 끝에 어렵게 장소를 차지해야 벚꽃놀이하는 기분이 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은 빗속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도 동료들로부터 "벚꽃놀이를 위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김이 새고 말았다.

주말인 24일은 날씨가 좋아 공원에 인파가 붐볐지만 단체 벚꽃놀이 행사용 철야 자리확보경쟁이 크게 줄어든 공원에서 단체행사는 소수의 그룹 몇이 눈에 띄는 정도였다.

단체행사 장소 중개업체인 '스페이스 마켓'의 경우 올해 '인도어 하나미' 예약 건수가 작년의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 회사 회원 1천3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벚꽃놀이에 가고 싶다'는 사람이 89.5%인데 비해 '가고 싶지 않다'는 응답은 10.5% 였다. '혼잡한게 싫다'거나 '꽃가루 알러지', '추위가 싫어서' 등이 가고 싶지 않은 주요 이유였다. '가고 싶지 않다'고 답한 사람의 60% 이상이 "실내 행사라면 가겠다"고 대답했다.

이 회사 홍보실 관계자는 아사히(朝日)신문에 "진짜 꽃이 아니라도 파티에서 그냥 계절감을 즐기고 싶다는 사람이 늘었다"면서 "즐기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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