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최대 외국인 투자자는 왜 반(反)푸틴 운동가가 됐나

입력 2018-03-27 15:13
수정 2018-03-27 15:36
러시아 최대 외국인 투자자는 왜 반(反)푸틴 운동가가 됐나

신간 '적색 수배령'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2009년 11월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교도소에서 젊은 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가 사망했다.

그는 자산운용사 허미티지 캐피털의 러시아 사업에 자문하던 중 러시아 고위관리가 연루된 거액의 탈세를 주장하다 투옥됐다.

당시 허미티지 캐피털의 최고경영자였던 빌 브라우더는 마그니츠키의 사인이 고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011년 미국은 마그니츠키의 죽음에 연관된 러시아인들의 미국 비자 발급을 거부하고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일명 '마그니츠키 법'을 제정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미국인의 러시아 아동 입양 금지법을 제정하며 '마그니츠키법'에 맞섰다. 당시 러시아와 미국의 대립은 국제사회에서 큰 이슈가 됐고 여전히 미국과 러시아 간의 갈등 요소로 남아 있다.

신간 '적색 수배령'(글항아리 펴냄)은 브라우더가 마그니츠키의 투옥과 사망을 둘러싸고 자신이 겪은 일을 소개하는 책이다.

이야기는 러시아에서 45억달러 규모의 자산운용사를 운용하던 그가 2005년 모스크바의 공항에서 여권을 압수당하고 추방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브라우더는 1936년과 1940년 미국 공산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얼 브라우더의 손자다. 그는 아무도 러시아에 관심을 두지 않을 당시 러시아 투자에 눈을 돌려 한때 러시아 최대 외국인 투자자가 됐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책 앞부분은 사모펀드 투자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며 미국 공산당 서기의 손자인 브라우더가 어떻게 러시아 투자에서 성공을 거뒀는지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그러다 브라우더가 러시아에서 추방되고 마그니츠키가 숨지면서 이야기는 정치스릴러로 바뀐다.

승승장구하던 브라우더는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로 자본금의 90% 이상을 잃었다. 이후 그는 손실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과 기업의 유착을 발견하고 이를 언론에 알리며 러시아 신흥재벌인 올리가르히에 정면으로 맞섰다.

마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던 올리가르히들을 배척하며 권력을 장악하던 시기와 맞물리면서 브라우더는 올리가르히와 대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후 브라우더는 푸틴의 눈 밖에 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책은 결국 러시아 입국 금지에 이어 친구였던 마그니츠키가 죽는 일까지 일어나면서 브라우더가 인권운동가·반(反) 푸틴 운동가로 변신해 활동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는 책에서 러시아를 푸틴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드는 범죄기업으로 묘사하며 자신의 추방과 마그니츠키 죽음의 배후에는 푸틴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도 대응에 나섰다. 러시아는 브라우더에 대해 2013년 인터폴을 통해 적색 수배령을 내렸지만 인터폴은 러시아의 요청을 거절했다. 러시아 법원은 마그니츠키 사후 진행된 재판에서 마그니츠키와 브라우더에게 거액의 탈세 혐의로 유죄 판결했고 브라우더는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브라우더는 "예전의 나는 주식 시장에서 대박 종목을 찾는 것이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부당한 세상에서 정의를 찾는 것만큼 내게 만족감을 주는 일도 없다"고 말했다.

김윤경 옮김. 496쪽. 1만9천500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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