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 단죄'…지연된 정의

입력 2018-03-27 11:34
수정 2018-03-27 14:46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 단죄'…지연된 정의



누명 쓴 소년 10년 복역 뒤 재심 끝에 무죄…진범 징역 15년 확정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지연된 정의는 굽이굽이 18년을 돌아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최모(33)씨는 2000년 8월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하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최씨는 10대 초반부터 다방에서 배달일을 했다.

후텁지근했던 그 날도 평소와 같았다.



최씨는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끔찍한 현장을 목격했다. 길가의 한 택시 운전석에서 기사 유모(당시 42)씨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던 것.

예리한 흉기로 12차례나 찔린 유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날 새벽 숨을 거뒀다.

최초 목격자인 최씨는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현장에서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자꾸 그를 범인으로 몰았다.

강압에 못 이겨 한 거짓 자백이 발목을 잡았다.

경찰은 최씨가 택시 앞을 지나가다가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었고, 이 과정에서 오토바이 공구함에 있던 흉기로 유씨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경찰 발표와는 달리 최씨가 사건 당시 입은 옷과 신발에서는 어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재판은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범인으로 몰린 최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0년 만기출소했다.

수감 생활 중에는 진범이 잡혔다는 희소식이 들렸다.

경찰은 사건 발생 2년 8개월이 지난 2003년 3월 이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김모(당시 19·현재 37)씨는 경찰에 붙잡히자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그의 친구로부터는 "사건 당일 친구가 범행에 대해 말했으며 한동안 내 집에서 숨어 지냈다"는 진술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의 범인이 이미 검거돼 복역 중이라는 이유 등으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김씨와 친구는 진술을 번복했다.

풀려난 김씨는 이혼한 부모에게 충격과 고통을 줘 재결합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변명했다. 김씨 친구도 주변 사람들에게 김씨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허위로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검찰은 구체적인 물증이 부족하고 사건 관련자의 진술이 바뀐 점 등을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내리면서 진범 김씨는 재판 한 번 받지 않고 혐의를 벗었다.



출소한 최씨는 2013년 경찰의 강압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016년 11월 "최씨가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무죄를 인정했다.

사건 발생 당시 15세의 나이로 구속돼 청춘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던 최씨의 누명이 풀린 것이다.

재심 선고 직후 검찰은 2003년 당시 용의자로 지목됐던 김씨를 체포해 구속기소 했다.

김씨는 사건 직후 개명해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왔다. 그는 기소 이후에도 줄곧 혐의를 부인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7일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진범 김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2월 개봉한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됐다.

사건을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뒤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지고 단죄가 이뤄져 다행"이라며 "진범이 따로 있는 현장에서 목격자인 15살 소년을 범인으로 만들고 이 소년이 복역 중인 상황에서 진범을 풀어준 당사자들은 아직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당시 수사진의 속죄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당시 군산경찰서 황상만 반장이 없었다면 재심조차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경찰과 검찰, 법원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형사보상금 8억4천여만 원 중 사법 피해자 조력 단체와 진범을 잡는 데 도움을 준 환상만(64)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에게 각각 5%를 내놓기로 약속했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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