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제·푸차르 이어 이집트 엘시시는 '21세기 파라오' 눈독

입력 2018-03-27 09:55
시황제·푸차르 이어 이집트 엘시시는 '21세기 파라오' 눈독

지구촌 권위주의 전성기에 또한명의 스트롱맨 도약채비

"30년 철권통치한 무바라크 이은 '독재형 지도자' 등장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중국과 러시아에서 스트롱맨들이 장기집권 입지를 다진 데 이어 중동의 핵심 국가 이집트에서 절대 권력을 보유한 채 장기집권을 노리는 '현대판 파라오'가 곧 대관식을 치른다.

이집트에서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연임이 매우 유력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30년 철권통치를 하다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권좌에서 물러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군부가 실제 거의 모든 권력을 소유한 이집트식 정치 체제가 구조적 결함을 드러내면서 군정보기관 수장·국방장관 출신 엘시시 대통령의 장기집권 가능성은 충분히 예측해 볼 수 있다.

대통령직을 한 차례만 연임할 수 있는 이집트 현행 헌법에 따라 2014년 6월 취임한 엘시시 대통령이 실제 연임에 성공하면 2022년까지 4년 더 집권하게 된다.

그러나 엘시시 대통령의 장기집권 구상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헌법 개정으로 3연임 금지 조항을 폐기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나 민족주의 정서에 기대 4기 집권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처럼 엘시시 대통령이 나중에 집권 야욕을 드러낼 수 있다는 얘기다.



경쟁이 사라진 이집트의 현재 대선의 양상만 봐도 그렇다.

이집트 정부는 2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자유 민주주의 대선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딴판이다.

유력 대권 주자로 꼽혔던 후보들은 전원 감옥에 가거나 경찰 조사를 받았고 주변 여건을 이유로 출마 포기 선언을 했다.

지난 1월 사미 아난 전 이집트 육군참모총장은 군부에 체포되고 아흐메드 샤피크 전 총리가 행방불명 소동 끝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집트 유명 인권 변호사 칼레드 알리도 주변 여건이 공정한 선거를 허용하지 않는다며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조카인 모하메드 안와르 사다트와 2012년 대선에 출마했던 이슬람학자 압델 모네임 아불 포투도 출마를 저울질한 끝에 대선에 나서지 않기로 하는 등 주요 후보들이 수상쩍은 이유로 줄줄이 낙마했다.

이 때문에 이집트 당국이 엘시시 대통령의 경쟁자들을 고의로 제거하거나 압력을 넣어 출마를 포기하게끔 유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엘시시 대통령의 유일한 대선 경쟁 후보의 존재감도 처음부터 없었다.

대중적 인지도가 매우 낮은 무스타파 무사(66) '내일당' 대표는 선거 운동 기간에도 이름을 거의 알리지 못했으며 한때 엘시시 대통령의 지지자로 알려졌다.

사실상 이번 대선이 엘시시 대통령이 단일 후보 형태로 출마해 지지자들의 신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차원의 요식행위의 장으로 전락한 셈이다.

'올아프리카 닷컴'의 칼럼니스트 와키라 마이나는 이집트 대선을 두고 '파라오의 귀환에 담대하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집트 대선에선 경쟁이 없을 것이다. 파라오 대통령에 맞설 유력한 모든 후보는 교도소에 있거나 낙마했다"고 적었다.



엘시시 대통령이 반대파를 숙청하다시피 하는 권위주의식 통치 스타일도 미래 장기집권의 길을 틀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쟁 세력 또는 엘시시 정권에 위협을 가할 정도의 반정부 세력의 지도자들을 제거해 일찌감치 그 기반을 무력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엘시시 대통령이 연임이 끝날 때쯤인 2022년 전후로 '후계자' 또는 '유능한 지도자·경쟁자'가 없다거나 자신의 인기가 여전하다는 이유를 대며 다시 출마할 여지를 높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낳는다. 엘시시 대통령은 2014년 대선에서 투표율은 47.5%, 득표율은 97%를 각각 기록했다.

현재 이집트 정부가 테러단체로 지정한 최대 무슬림 조직 무슬림형제단의 일부 간부·회원과 야권 성향의 지도자 일부는 국내서 숨어 지내거나 해외로 도피한 상태이다.

여기에 수도 카이로의 길거리나 언론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 활동가나 야권 지도자는 반국가 행위 또는 테러 혐의 등으로 체포돼 군사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받는 등 처벌을 받기 일쑤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대다수가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인 이집트인 약 6만명이 '테러리즘'이란 죄목 아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집트에서는 잦은 테러 사건 발생에 따른 비상사태 선포로 언론과 집회·시위의 자유가 거의 보장돼 있지 있으며 정보기관과 경찰의 감시망도 매우 촘촘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대선 시행에 앞서 2013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축출을 이끈 전직 국방장관인 엘시시가 군과 보안기관, 언론 통제를 받는 미디어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의 손쉬운 승리를 내다봤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엘시시 대통령이 집권한 뒤 이집트의 정치·사회적 민주화는 무바라크 집권 때보다 더 퇴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최근 러시아 대선에서 승리한 푸틴 대통령은 2024년 4기 임기가 끝나지만, 일각에선 그가 종신집권 기반을 다지기 위해 3연임 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개헌을 추진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개헌을 통해 중국 국가주석을 2연임으로 제한한 조항을 폐지하고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명시하는 등 '1인 중심의 종신집권 체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때 '현대판 파라오'로 불리며 30년간 이집트를 철권으로 통치했던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중동권을 휩쓸던 '아랍의 봄' 여파로 2011년 1월 25일 이집트 사상 초유의 민주화 시위에 직면했고 그다음 달 권좌에서 물러났다.

gogo21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