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투어에 등장한 골치거리…술 취한 '불량 관객'을 어찌할꼬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2002년 경기도 고양시 한양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한국오픈 골프대회 최종 라운드 18번홀 티잉그라운드에서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는 관객 한 명을 골프 클럽으로 때리려는 몸동작을 했다가 큰 파문을 일으켰다.
가르시아는 기자회견에서 "장난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선수들이 샷을 할 때 사진을 찍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여 갤러리 관전 매너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 사건은 "불량 관객 탓"이라는 자성론과 "그래도 선수 태도가 문제"라는 논쟁을 낳았다.
한국과 중국 등에서는 골프대회에서 관전 매너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불량 관객' 때문에 벌어진 말썽이 적지 않았다.
선수가 샷을 막 하려는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가 하면 핸드폰 벨 소리, 심지어는 경기 중인 선수 옆에서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다 제지를 당하는 일은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그때마다 "골프 선진국 미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라는 지적이 따랐다.
하지만 세계 최고 무대라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도 최근 '불량 관객'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PGA투어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3라운드를 마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어떤 관객 한 명이 계속 내 아내 이름을 외치며 따라다녔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매킬로이는 "경기를 즐기는 건 좋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다"면서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술 판매를 제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불량 관객은 처음이 아니다.
이날만 해도 타이거 우즈(미국)를 따라 다니면서 야유를 보낸 관객 서너 명을 보안 요원이 주의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혼다 클래식 때 저스틴 토머스(미국)가 샷을 할 때마다 "벙커에 들어가라"거나 "물에 빠져라"고 목이 터지라 외친 관객은 대회장 밖으로 쫓겨났다.
이 관객을 쫓아내라고 신고한 토머스는 "소리나 지르고 선수에게 야유를 퍼붓는 게 골프를 즐기는 방식이라고 여기는 관객이 있다는 게 불행한 일"이라고 밝혔다.
2002년 한국에서 관객을 위협했던 가르시아는 지난해 혼다 클래식 때 "당신 결혼은 실패로 끝날 거야!"라는 야유를 받았다. 가르시아는 당시 신혼이었다.
상당수 전문가는 PGA투어에 불량 관객이 늘어난 것은 '피닉스 오픈 효과'라고 분석한다.
골프 관전 매너를 강요하지 않아 야유가 무제한 허용되는 피닉스 오픈은 '골프 해방구'라 불리며 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으는 등 인기를 끌었다.
피닉스오픈은 특히 술에 취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관객으로 넘쳐난다. '콜로세움'이라는 별명이 붙은 16번홀(파3)에서는 실수를 저지른 선수에게 맥주캔이 날아온다.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여긴 골프대회 주최 측이 정숙과 야유 금지라는 전통적인 골프 관전 매너를 슬며시 완화하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PGA투어에서 쓴소리를 자주 날리는 빌리 호셜(미국)은 "모든 대회가 피닉스오픈을 흉내 내려고 한다. 그건 좋은 게 아니다"고 일침을 놨다.
그러나 PGA투어에서 공격적인 매너 불량 관객은 라이더컵이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유럽과 미국 골프 대항전 라이더컵은 열릴 때마다 상대편 선수에게 욕설에 가까운 야유를 퍼붓거나 상대편 선수의 실수에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비매너'가 판을 친다.
이런 라이더컵 때 분위기가 투어 대회에서도 표출된다는 분석이다.
PGA투어는 불량 관객은 드문 사례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제이 모나핸 커미셔너는 매킬로이의 사례를 보고받고 "코스에서 술 판매는 제한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피닉스오픈을 오랫동안 취재한 골프 칼럼니스트 래리 보해넌은 "골프 경기장에서 그릇된 언행을 하는 사람은 즉각 제지하고 꾸짖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서 "그러나 그런 사람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kho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