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자 아이스하키 전설의 방북 "단일팀 정신 잇고 싶어"
동계올림픽 금메달 4회 수상 위켄하이저, 이달 초 평양 방문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여자 아이스하키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헤일리 위켄하이저(40·캐나다)는 남북 단일팀이 결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마뜩잖았다.
아이스하키에만 열중하고 싶은 선수들에게 원치 않는 정치적인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자격으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찾은 그는 남북 단일팀이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목격한 뒤 생각이 달라졌다.
19일(한국시간) 캐나다 일간 '캐네디언 프레스'에 따르면 위켄하이저는 이달 초 북한 평양을 방문해 북한 남녀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선진 아이스하키를 전수하고 돌아왔다.
위켄하이저는 캐나다 외무부와 총리실에 협조를 요청한 뒤 이미 북한 남자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해본 경험이 있는 남자 선수 15명과 함께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다. 전혀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다.
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유언장을 작성했다. 부모님에게는 총리실 전화번호를 알려준 뒤 6일까지 돌아오지 않을 시 이곳으로 전화하면 유언장이 있는 위치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일러줬다.
위켄하이저에게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 단일팀은 잇따른 핵실험으로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이 전 세계를 향해 놓은 일종의 다리였다. 위켄하이저는 올림픽이 끝났다고 해서 그 다리가 끊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원한 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나는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 누군가는 그들을 그저 커다란 (정치적인) 명분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이자 한 아이스하키 선수로서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위켄하이저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최고의 선수인 시드니 크로스비(피츠버그 펭귄스)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위켄하이저는 23년 동안 캐나다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276경기에서 168골 211어시스트를 올렸다. 캐나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역대 포인트 1위다.
그는 남자 아이스하키 프로리그에서 뛰면서 득점까지 한 최초의 여자 선수로도 유명하다. 핀란드와 스웨덴 프로리그의 남자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스틱을 잡고 빙판을 누볐다.
그는 2014년 소치 대회까지 동계올림픽에 5번 출전해 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여자 아이스하키 역대 최고의 선수다.
위켄하이저는 평창올림픽 개막에 앞서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단일팀이 첫 경기를 앞둔 지난달 8일 강릉 경포 해변으로 나들이를 나간 적이 있는데,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위켄하이저를 알아본 새러 머리(캐나다) 단일팀 감독은 격려의 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긴장한 듯 보였던 북한 선수들은 평양에서 다시 만난 위켄하이저를 반갑게 맞아줬다고 한다.
그는 "내가 온다는 얘기를 미리 듣고는 그들이 내게 다가와 줬다. 정말 행복했다. 따뜻하게 환영해줘서 정말 즐거웠다"고 돌아봤다.
위켄하이저는 이번 방문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오는 11월 캐나다를 방문하는 방안을 북한 측과 논의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나는 스포츠의 힘을 믿는다"며 "그것은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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