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각본' 무시한 틸러슨,기업경영 마인드 공직 접목에 실패
워싱턴 정치 외면, 정치적 우군 없어 고립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한 줄로 전격 해임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13개월에 걸친 그의 공직 실험은 불명예로 끝났다.
틸러슨의 불명예 퇴진은 북한 문제에서 아이큐(IQ) 논쟁에 이르기까지 임명권자인 트럼프 대통령과 잦은 공개 충돌이 주된 배경이기는 하지만 기업최고경영자(CEO)로서 그의 경험과 능력이 결국 환경이 다른 공직 분야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포린폴리시(FP)나 애틀랜틱 등 전문 잡지들에 따르면 틸러슨 전 장관은 우선 역대 각료들의 전통인 '워싱턴 정치'를 소홀히 했으며 여기에 기업 경영적 마인드로 국무부를 운영하려 함으로써 국무부의 기능과 역할을 크게 저하시킨 것이 그의 '장수' 또는 단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안 좋았지만 그보다 더 트럼프 내각에서 각종 문제를 일으킨 각료들도 적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벤 카슨 주택도시개발장관이나 벳시 디보스 교육장관, 스콧 프루이트 환경보호청장 등은 재임 중 트러블메이커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질 우선순위에 올라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트럼프 대선 캠프의 러시아 스캔들 조사를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비난 대상이 돼온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도 트윗 해고 직전까지 간 상태이나 의회 등 워싱턴 정가의 우군들이 트럼프에 그의 해임을 적극적으로 만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면 틸러슨 전 장관은 워싱턴에 이러한 정치적 우군이 없다는 점이 조기 낙마의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 주요 부서 책임자의 경우 전통적으로 백악관은 물론 의회와의 원만한 관계 구축이 필수 과제가 돼왔으나 틸러슨 전 장관은 가급적 워싱턴과 거리를 두는 조용한 일처리를 선호해왔다는 것이다.
FP는 틸러슨 전 장관이 의회와 외교전문가들, 언론 등과의 긴밀한 관계 구축이라는 기관장으로서 전통적인 '성공의 각본'을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역대 행정부 각료들은 통상 수시로 의원들을 부처로 초청해 국정을 논의하는 적극적인 스킨십을 구사해왔으나 틸러슨 전 장관은 이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이다.
워싱턴에 정치적 우군을 심어두는데 소홀히 함으로써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도와주는 세력이 나서지 않았다.
틸러슨 재임 기간 국무부는 예산감축과 조직개편, 그리고 경력 외교관들이 대거 이탈로 전례 없는 혼돈에 빠졌다.
이는 외교를 기업경영식으로 간주한 탓이라는 분석이다. 비용절감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구조 조정식 운영이 초래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한 부서를 책임지는 각료라면 최소한 명확한 어젠다를 갖고 이를 전력 추진하는 집중력을 보여줬어야 하나 그러지 못했고 자신을 수행하는 국무부 출입기자단을 중요한 자산으로 간주했어야 하나 이를 화물로 취했다는 혹평도 받고 있다.
또 단기적 성과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상, 기업경영처럼 중장기적 성과를 중시하는 틸러슨의 마인드가 맞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틸러슨이 초반에 뭔가 성과를 올렸어야 하는데 역대 국무장관에 비해 성과가 적었다는 것이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간 분쟁의 해결이 틸러슨이 성과를 낼 좋은 기회였으나 오히려 백악관이 사우디를 두둔하고 나서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이다.
틸러슨은 국무장관 취임 전 직원 7만 명에 연 400억 달러(약 44조 원)의 예산을 다루는 세계최대 기업 가운데 하나(엑손모빌)의 CEO로서 기업경영경험과 정부기구 운영의 접목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그의 조기퇴진으로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영전략이 정부 운영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에 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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