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임박한 미 철강 관세, 정부 협상팀 막판 선전 기대한다
(서울=연합뉴스) 미국의 철강 관세부과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발동한 행정명령이 23일(미국시간) 발효하는 것이다. 브라질, 유럽연합(EU)과 함께 주요 대미 철강수출국으로 꼽히는 우리나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런데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처음부터 '한시적 예외국'으로 인정했다. 안보 우방국으로 여기는 호주는 행정명령 발표 후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면서 미정부는 관세부과 대상국들과 발효일 전까지 추가 협상을 벌일 뜻을 내비쳤다. 그들이 만족할 만한 카드를 들고 오면 호주처럼 관세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우리 정부가 미정부의 철강 관세를 피하고자 막판 총력전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안보 우방국으로 따지자면 한국이 호주에 뒤질 이유가 없다. 미국의 이번 철강 관세 공세는 명분과 논리상 허점을 안고 있다고 봐야 한다.
철강 관세에 관한 대미 협상의 선봉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맡은 것 같다. 김 본부장은 15∼16일 한미FTA 개정 3차 협상을 마친 뒤에도 계속 미국 현지에 머물면서 행정부와 정·재계 관계자들을 설득할 것이라고 한다. 김동연 부총리도 19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을 만나 철강 관세 면제를 요청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총리와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각각 미국 재무·상무 장관에게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무장관도 외교·안보 라인을 통해 미국 측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전방위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런 가운데 철강 관세 문제는 한미FTA 개정 협상에서도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산업부는 3차 협상 종료 후 '이슈별 실질적 논의에 진전이 있었다'면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FTA 협상을 활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반대로 읽으면 걱정스럽기도 하다. 철강 관세를 피하려면 FTA 협상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양보를 각오해야 한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철강 관세를 지렛대로 한미FTA 개정에서 우리 측의 파격적 양보를 끌어내려 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미국 측은 철강 관세와 연계해 자동차와 부품의 비관세 장벽 해소, 원산지 규정 강화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깝지만 우리한테 대응할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수세에 몰린 우리 협상팀이 잘 대처하기를 바라지만 돌파구를 찾는 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공조가 얼마나 굳건한지를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강 관세를 피하려고 미국 측과 접촉 중인 우리 협상팀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도리어 FTA 개정 협상에서 우리 측이 '융통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우리 정부의 중재로 북미 회담 합의가 이뤄지고, 북핵 해결의 새로운 국면이 열린 점을 생각하면 미국의 이런 태도는 실망스럽다. 호주는 관세 예외로 인정하면서 한국을 그대로 둔 부분은 특히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 철강업계는 그동안 57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해 3만3천 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한다. 중국산 철강의 '환적(換積. 옮겨싣기)' 문제도 미국 측의 지나친 의심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 제품 중 중국산 소재를 사용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면서 성심껏 설명해도 요지부동이라면 애초에 협상 공간은 협소했다고 봐야 한다. 국내 통상분야 일각에선 결국 미국에 이익이 될 만한 카드를 제시해야 할 거라는 타협론도 나온다. 국내 최고의 통상교섭 전문가로 꼽히는 김현종 본부장은 "복잡한 주판알을 튕겨야 할 것 같다"며 고충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번 대미 협상의 본질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협상의 상대를 인정하고 현실적인 타협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뜻 같다. 같은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표방하는 '국익 우선주의'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일지 모른다. 그래도 현실에 맞춰 최적의 협상 카드를 제시하고,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려는 노력까지 게을리해선 안 된다. 정부 협상팀의 지혜로운 선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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