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최고] 호킹 박사의 삶은 '불완전에 갇힌 완전한 정신력'
질환에 편견없이 세계적 업적 남긴 건 '기적' 아닌 '극복'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아무리 과학에 문외한일지라도 '스티븐 호킹'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학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업적을 떠나 평생 난치성 질환을 극복하며 살아온 그의 삶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티븐 호킹을 괴롭힌 질환은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진 루 게릭병(Lou Gehrig's disease)에서부터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운동신경질환(MND·motor neurone disease)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질환의 이름이 너무 어렵다 보니 한국어를 곁들여 근육위축가쪽증후군, 근육위축가쪽경화증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이 역시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이 질환은 약 150년 전인 1869년 프랑스의 신경학자인 장마르틴 샤콧(Jean-Martin Chartcot)이 처음으로 환자를 진단해 학계에 보고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1939년 미국의 유명 야구 선수인 루 게릭(Lou Gehrig)이 이 질환을 앓게 된 이후 그의 이름을 딴 루게릭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루 게릭은 1939년 7월 양키 스타디움에서 가진 은퇴식 연설에서 "피곤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시 잘 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비 증상에 음식을 삼키지도, 말하지도, 걸을 수도 없게 된 자신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것이다. 그는 은퇴 2년여가 지난 1941년 3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고, 그의 등 번호 4번은 양키스에서 영구 결번이 됐다.
사실 루 게릭병 환자들은 루 게릭처럼 질병 진단 후 몇 해를 견디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통계적으로는 3명 중 1명이 1년 이내에, 절반 이상이 2년 이내에 사망한다. 운동신경이 이어지는 얼굴, 팔, 가슴, 다리 등 몸의 각 부위가 광범위하게 마비되면서 결국 가로막과 갈비 사이 근육이 약해져 호흡곤란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븐 호킹은 달랐다.
호킹 박사의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그는 21세 생일 직후인 1963년에 ALS로 진단받았다. 의술이 떨어지는 당시로써는 머지않은 미래의 사망선고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ALS 진단 이후 과학 분야에 길이 남을만한 수많은 업적을 쌓으며 76세까지 삶을 영위했다.
루게릭병 환자 진료에 천착해온 의사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를 궁금해하고, 그를 통해 질환에 대한 또 다른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호킹 박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옥스퍼드 대학 3학년 때 점점 더 서툴러 지는 것을 알아차렸고, 분명한 이유도 없이 한두 차례 넘어졌다"고 말했다. 이게 ALS의 첫 증상이었다. 이후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다닐 때 아버지에 이끌려 병원을 찾은 후에야 질환을 알게 됐다.
의학자들은 호킹 박사와 ALS의 싸움이 시작부터 달랐다고 본다. 보통 ALS는 평균 진단 나이가 55세로 삶의 후기에 발병하는데, 호킹은 매우 젊은 나이에 증상이 나타났다. 이 차이가 그의 '기적적인' 장수를 부분적으로 설명한다는 분석이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임상신경학 나이절 리(Nigel Leigh) 교수는 2002년 의학저널 BMJ(the British Medical Journal)에서 호킹 박사에 대해 "그는 특별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아온 것뿐만 아니라, 이 병이 소진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종류의 안정화는 극히 드문 일이다"라고 언급했다.
비록 조기 진단이 그에게 질병의 삶을 받아들이도록 했지만, 이는 같은 질병을 훨씬 늦게 진단받은 사람들보다 더욱 오래 살아남을 기회를 줬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ALS센터 레오 맥클러스키(Leo McCluskey) 교수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의 인터뷰에서 "(호킹 박사의) 병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여러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매우 천천히 진행되는 청소년 발병 질환과 유사할 수 있다"며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하지만 정작 호킹 박사는 자신의 학문적 업적과 견줄만한 '장기간 생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전형적인 운동신경질환(MND) 사례와 다르게 질환이 진행된 이유를 묻자 "저는 MND가 다른 여러 원인을 가질 수 있는 증후군이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저의 ALS는 어쩌면 비타민의 흡수가 좋지 못한 것이 차이점일 수 있어요(Maybe my variety of ALS is due to bad absorption of vitamins)"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 때문인지 당시 호킹 박사는 그의 식단을 매일 미네랄과 비타민제로 보충했다고 한다. BMJ와의 인터뷰에서는 아연, 대구 간유 캡슐(cod liver oil capsules), 엽산, 비타민B 복합체, 비타민B-12, 비타민C, 비타민E가 도움이 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별다른 치료도 받지 않았다. 치료는 팔다리와 근육에 수동적인 흉부물리요법(passive chest physiotherapy)과 물리치료(physiotherapy)가 전부였으며, 특별한 전문의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호킹 박사의 장수 이유를 그의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호킹 박사의 삶이 비슷한 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 더 큰 시사점을 주는 건 자신의 질환에 대한 신체적인 편견을 갖지 않고 극복해 냈다는 점"이라며 "이 같은 메시지는 과학계에 미친 영향 못지않게 의학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호킹 박사는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영감을 주며 삶에 대한 의지를 북돋웠다.
1979년 환자들의 모임인 운동신경질환협회(the Motor Neurone Disease Association)가 설립된 이후 이 자선단체에 줄곧 참여했고 운동신경질환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후원자로도 활동했다.
영국 운동신경질환협회 리처드 그린(Richard Green)은 이 병의 고전적인 정의인 '불완전한 몸에 갇힌 완전한 정신력(the perfect mind trapped in an imperfect body)'을 호킹 박사가 충족했다고 평가했다.
또 '스티븐 호킹의 우주'의 저자인 존 보슬로우(John Boslough)는 호킹이 ALS를 진단받고 매우 우울해졌지만, 곧 죽지 않을 게 분명해짐에 따라 그의 정신은 회복되었고 자기 일에 몰두했다고 전했다.
결국, 호킹 박사가 젊은 시절 불의의 난치병에도 세계적인 과학자로 거듭나며 장수할 수 있었던 건 '기적'이 아니라 '극복'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의 탁월한 지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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