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 휠체어 컬링 정승원이 손글씨로 적은 빼곡한 자기 주문

입력 2018-03-15 14:00
수정 2018-03-18 17:15
[패럴림픽] 휠체어 컬링 정승원이 손글씨로 적은 빼곡한 자기 주문

버릇 고치기 위해 '안 죽을 만큼 엎드려라' 등 글귀 적어넣어

글귀 힐끗 본 뒤 결정적인 드로우샷으로 한국 4강행 이끌어



(강릉=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팽팽한 접전이 펼쳐지던 중 한순간에 경기장이 떠나갈 것 같은 환호성이 터졌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휠체어 컬링 한국과 영국의 경기가 열린 15일 강릉컬링센터.

양 팀은 4-4로 맞선 채 마지막 8엔드에 돌입했다.

서드 정승원(60)은 영국에 유리한 전세를 단숨에 뒤집었다.

영국의 스톤 2개가 하우스 내에 포진해 있는 상태에서 좁은 틈새를 비집고 기가 막히게 드로우샷(하우스 중앙에 스톤을 보내는 샷)에 성공했다.

한국은 이 샷 덕분에 영국을 5-4로 제압, 남은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4강행을 확정했다.

경기를 마치고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정승원은 "그게 안 들어가면 복잡해져서 죽을 힘을 다해서 던졌는데 결과가 좋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선수들은 이날 체력이 바닥 가까이 내려간 채 경기에 임했다.

전날 밤늦게까지 경기를 치른 뒤 40∼50분 거리인 평창선수촌으로 이동한 뒤 이날 오전 9시 35분 시작하는 영국전을 치르러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느라 4∼5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정승원은 "잠이 부족해서 걱정을 정말 많이 했는데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위닝 샷을 넣고 마음 같아서는 1분간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피곤해서 못하겠더라"며 껄껄 웃었다.



인터뷰 중인 정승원의 휠체어 손잡이에는 한글로 뭔가를 잔뜩 적어넣은 노란 종이가 부착돼 있었다.

질문을 받은 정승원은 쑥스러워하면서 "아, 이거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한 문구"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장창용 멘탈코치는 선수들에게 '우리 팀을 빛나게 하는 심리기술 카드'라는 것을 만들어줬다.

정승원이 늘 몸에 지니고 있는 이 카드에는 '나는 프로페셔널이다', '100% 현재 집중된 샷을 하자', '지금 시합은 과정 단서를 실천하는 것이다', '지금 주어진 이 샷뿐이다', '그동안 흘린 피눈물을 잊지 말자'라고 적혀 있다.

정승원은 여기에 더해 정신을 가다듬기 위한 문구를 노란 종이 위에 적어 휠체어 손잡이에 붙였다.

그는 불쑥 "오늘 어떻게 그 샷을 넣을 수 있었는지 아느냐"며 '안 죽을 만큼 엎드려라'라고 적힌 글귀를 보여줬다.

정승원은 상반신을 앞으로 엎드리지 않은 채 허리를 뻣뻣하게 세우고 샷을 하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는 영국 쪽으로 경기가 기운 상황에서 이 글귀를 새삼 힐끗 보고는 샷을 했고, 결국 한국이 승리를 쟁취했다.

정승원은 "이미 4강에 들었기 때문에 중국전은 부담 없이 임하겠다"며 "오늘 푹 자고 나면 내일 4강전에서도 좋은 결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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