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전고운 감독 "말도 안되는 집값, 힘든 도시의 삶 담아"
독립영화 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 4번째 작품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제가 살면서 겪었던 부조리함을 말하고 싶었어요. 말도 안 되는 집값과 만족할 수 없는 삶의 구조, 힘들게 취업해도 돈을 모으기 어렵고, 돈을 모아도 집을 사기도 어렵고…또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감정들을 모아서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영화 '소공녀'는 전고운(33) 감독의 데뷔작이다. 하루 일당 4만5천 원을 쪼개 살아가는 30대 가사도우미 미소(이솜 분)가 술값, 담뱃값, 월세 등 모든 물가가 감당할 수 없이 오르자 결국 집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서는 내용을 그렸다.
최근 서울 명동 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만난 전 감독은 "미소는 사실 저와 반대의 인물"이라며 "제가 현실에서 못한 것을 실천하는 주인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 중 미소는 대학 시절 밴드를 함께했던 선후배, 동기들 집에 계란 한판을 사들고가 하룻밤을 청한다.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삶도 행복하지만은 않다. 저마다 결핍을 안고 아등바등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집은 없어도 자기 취향대로 살아가는 미소는 가장 비현실적이면서 판타지적인 캐릭터다.
전 감독은 "미소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선택하는 용감한 인물"이라면서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니까 미소라는 캐릭터에서 위안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거리로 나앉을망정 미소가 포기할 수 없는 취향은 위스키 한잔과 담배 한 모금, 그리고 남자친구와의 소소한 데이트다.
"지독하게 춥고 힘든 현실을 살아가려면 누구나 어딘가에 중독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랑, 술, 담배도 그런 것 중 하나죠."
남의 집을 떠도는 미소에게 친구들은 "염치없다", "그렇게 살 바에야 나랑 결혼할래"라며 막말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 은연중에 만연한 '폭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전 감독은 "자신의 가치판단만 맞는다고 생각하는 게 폭력인 것 같다"면서 "다름을 존중해주고, 소수자들이 살기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말했다.
극 중 미소의 직업을 전문 가사도우미로 설정한 점도 흥미롭다. 전 감독은 "젊은 친구가 가사도우미를 한다는 점이 '엣지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청소가 우리 일상에서 무척 중요한데, 하찮게 여겨지는 것도 안타까웠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또 제41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전 감독은 "마냥 기분이 좋고 당당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사실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2년 동안 돈을 벌지 못했고,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죠. 서른 넘어서도 부모에게 용돈 받는다는 데서 오는 부채의식, 자괴감, 괴리감이 컸죠. 무엇을 위한 꿈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소공녀'는 독립영화 창작집단인 광화문시네마의 4번째 작품이다. 광화문시네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동창인 김태곤('1999,면회'), 권오광, 우문기('족구왕'), 이요섭('범죄의 여왕'), 전고운 등 5명의 감독과 김지훈 프로듀서 1명이 모여 만든 독립영화 제작사다. 전 감독은 2016년 '범죄의 여왕'을 선보인 이요섭 감독과 부부 사이다.
"남편은 '내조의 왕'에요. 제가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이해해줬죠. 저를 촬영장에 태워주고, 콘티도 그려주고…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입니다."
전 감독은 미소를 연기한 배우 이솜에 대해서도 "이솜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며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다른 모습의 미소가 돼 있었고, 그의 연기에 대해 아쉬움이 한점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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