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원전수출 정책 '흔들', 건설비용 증가로 채산성 기대난
안전대책비 증가, 터키 시높 원전 건설비용 배 이상 늘어
정부내에서도 "도시바 재판 우려"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정부가 신칸센(新幹線)과 함께 인프라 수출의 주력으로 삼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수출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福島)원전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수출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안전대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채산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있어서다.
15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 일본 기업이 터키에서 추진하고 있는 원전의 건설비용이 당초 계획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흑해 연안 시노프 지구에 원전 4기를 건설하는 이 사업의 사업비는 애초 2조1천억 엔(약 21조 원)으로 예상됐다. 두산중공업 등 국내 기업도 수주를 추진했으나 미쓰비시, 이토추(伊藤忠)상사 등이 참가한 일본 기업 컨소시엄이 따냈다. 아베 총리와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측이 사업화를 위해 정밀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원전 1기당 건설비용이 1조 엔(약 10조 원)을 넘어 4기 건설비용은 당초 예상의 배가 넘는 4조 엔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목표연도인 2023년까지 완공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측이 이런 사정을 내밀히 터키 측에 전하자 터키 측은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노프 원전은 일본 기업이 비용을 부담해 건설한 후 발전사업으로 얻는 이익으로 건설비를 회수하기로 돼 있어 사업비가 늘어나면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 전기요금이 너무 높아 팔리지 않게 되면 채산성이 맞지 않을 우려가 있다.
일본 정부는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터키 정부에 곧 제출할 최종 보고서에 터키 정부의 자금지원과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사실 등을 담을 계획이지만 터키 측이 응할지는 미지수다.
원전수출은 기업이 위험부담을 모두 떠안기 어려워 정부가 지원하는 게 일반적이다. 히타치(日立)제작소가 영국에서 추진하는 원전 건설 사업은 일본과 영국 정부가 관민 합동으로 총 3조 엔(약 30조 원)을 투·융자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일본의 원전수출은 다른 곳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기업의 수주가 유력시되던 리투아니아와 베트남 원전건설 사업은 언제 착공할지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사업 추진 중에 난관에 봉착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함께 핀란드 원전건설에 참여한 프랑스 아레바사는 원전 사업비가 늘어나는 바람에 경영위기에 빠져 2015년 프랑스 정부의 구제지원을 받기로 했다. 도시바(東芝)는 미국 사업에서 거액의 손해를 보는 바람에 미국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가 도산했다.
그런데도 아베 정부가 계속 원전수출에 매달리는 건 일본 국내에서 원전 신·증설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원자력 기술을 유지할 수 없고 후쿠시마 원자로 폐기도 추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원전사업의 어려움을 보는 업계와 정부의 시각차도 확대되고 있다. 도시바는 "위험이 어디까지 커질지 예상할 수 없다"며 해외 원전건설사업에서 철수했다.
영국에서 원전 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히타치는 전력회사 등 다른 기업의 출자가 예상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사업을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나카니시 히로아키 히타치 회장은 "투자업계에 투자 가능한 사업이라고 설명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국산 제트 여객기 MRJ의 잇단 출하연기 등으로 경영위험을 안고 있다. 아사히는 채산성을 기대할 수 없는 조건으로 원전을 건설하면 "도시바의 재판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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