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권 시·군, 가깝고도 먼 이웃…상생발전 아직은 '글쎄요'

입력 2018-03-14 08:00
설악권 시·군, 가깝고도 먼 이웃…상생발전 아직은 '글쎄요'

(속초=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강원 속초시와 양양·고성군 등 설악권 지자체가 현안을 둘러싸고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가깝고도 먼 사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겨울 가뭄에 고통받는 속초지역에 양양군과 함께 식수를 공급한 고성군이 속초시가 발표한 중·장기적인 식수확보대책에 대해 반발하면서 모처럼 형성된 설악권 상생발전 분위기에 금이 갈 위기에 놓였다.

속초시장의 사과로 갈등은 봉합됐으나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로 갈등이 재현될지 몰라 설악권 상생발전은 아직은 살얼음 형국이다.

속초시를 사이에 두고 양양군과 고성군이 붙어 있는 설악권 3개 시·군은 하나의 생활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통이 불편할 때는 생활권을 분리되기도 했으나 고속도로 개통 등으로 자치단체 간 접근성이 좋아진 요즘에는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속초시에서 쇼핑과 문화활동을 즐기는 양양·고성지역 주민들이 많은 데다가 속초시에 거주하며 양양과 고성지역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속초시와 고성·양양군은 서로 살을 맞대고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자치단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이해관계가 얽히는 일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군 통합이다.

지난 1994년과 1995년 속초와 양양 통합이 추진됐으나 양양지역 주민들의 결사반대로 무산됐다.

3년 후인 1998년에도 속초와 양양, 고성군의 통합이 속초원로회의 주도로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이후 3∼4차례 더 설악권 통합 문제가 속초지역에서 제기됐으나 모두 무산됐고 자치단체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양양지역 주민들은 속초시에 대해 남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

속초시는 양양군 도천면 속초리에서 속초읍으로 승격한 후 1963년 시로 승격했다.

즉 속초시는 과거 양양군에 속해 있었다는 자부심이다.

따라서 속초시에 통합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최근에는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등 도로망 개선에 따른 주변 여건 변화로 지역 발전이 가속화 하면서 양양이 속초보다 더 발전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고 있다.

고성지역은 향후 통일이 되면 북고성과 합쳐야 하므로 설악권 통합은 관심 밖이라는 입장이다.

통합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양양군과 고성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행정구역이 좁아 애를 먹는 속초시가 한계를 벗어나고자 인접 자치단체와 통합을 추진하려 한다"며 "통합하면 주민혐오시설은 전부 양양이나 고성지역에 설치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3년 전 설악권 4개 시·군의 번영회가 구성한 설악권상생발전협의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들 자치단체의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민간이 구성한 협의체에 자치단체장과 의회의장까지 참여해 금강산관광 재개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동서고속화철도사업 확정 등 지역별 현안해결에 힘을 합쳐 좋은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극심한 겨울 가뭄에 고통을 겪는 속초시에 고성과 양양군이 비록 한시적이지만 물을 공급해 위기 상황을 넘길 수 있도록 했다.

취수원 부족으로 만성적인 식수난에 시달리는 속초시는 인근 지역에서 물을 공급받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물이 넉넉하지 않고 향후 지역이 발전하면 물 수요가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고성과 양양군의 입장에 따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지난달 고성과 양양군의 속초시 물 공급은 설악권 상생발전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가뭄 해소 이후 불거진 속초시와 고성군 간의 갈등은 상생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

지난 6일 제한급수를 해제하는 자리에서 이병선 속초시장은 고성군 원암저수지 농업용수 식수사용 등 중·장기적인 식수확보 대책을 전격 발표했다.

이에 고성군이 합의사항이 아닌 일방적 주장이라며 사회단체 대표들이 속초시를 항의 방문하고 군수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즉각 반발했다.

고성군은 성명에서 속초시의 일방적인 발표 철회를 요구하고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재발할 경우 물 공급 문제에 대해 어떤 협의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화들짝 놀란 속초시장이 "앞서간 면이 있다"며 사과하고 고성군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기로 하면서 이번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이해관계가 얽히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언제라도 갈등과 충돌은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설악권상생발전협의회장인 정준화 양양군번영회장은 "속초시의 중·장기적인 식수확보 대책은 인접 자치단체와 협의해서 처리할 사항이므로 이를 논의할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mom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